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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은 멜론 차트를 보고 도영은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음파음파가 진입 6위라니…… 레드벨벳의 음파음파 (Umpah Umpah) 뮤비를 본 도영은 이번이야말로 우주최강 썸머 곡이 나왔다고 확신했었다. K국의 멜론차트는 씨스타가 해체된 뒤 일 년 내내 이별하고 술 마시고 구구절절한 발라드 차트로 변모했지만, 도영은 이번을 기회로 판도가 뒤집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도영의 확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음파음파는 눈물 질질 포장마차st 발라드를 이기지 못하고 6위라는 애매한 순위에 안착했다. 도영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는데, 왜냐하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그놈의 발라드가 주구장창 나와 돌아버릴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비통한 마음을 붙잡고 트위터에 접속한 그는 한국 주류 감성에 회의를 느끼는 또 다른 nnn명의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안도했다. 도영은 자신의 눈이 틀린 게 아니라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늦게까지 트친과 맨션을 주고받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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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도영은 새벽부터 울린 화재경보기 덕분에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잠에서 깼다. 화들짝 놀란 도영이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댄 순간 거짓말같이 경보기가 멈췄다. 잠이 안 깬 머리를 붙잡고 비척비척 걸어서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성실하게 제보까지 마친 도영은 이대로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아까 경보기가 울릴 때만 해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막상 앞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바닥에 앉아서 진지하게 캐나다 이민을 생각하던 도영은 기계 오작동이라는 경비실의 안내방송을 듣고 간신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영은 아침부터 울려대던 경보에도 불구하고 독일전에서 손흥민이 골 넣을 때보다 동요가 없는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출근했다. 안전불감증 코리아는 어디 멀리 있지 않다고, 바로 당신 주변에 있다는 공익광고 협의회 같은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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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에 사는 도영은 매일 아침 경의중앙선을 타고 성동구청으로 출근을 하는데, 매일 아침이 전쟁이었다. 경의중앙선은 거의 모든 열차가 시간표보다 늦게 도착하고, ktx와 무궁화호가 오면 항상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예의 바른 지하철이었기 때문이다. 도영은 출근 지옥을 겪을 때마다 주민등록증에 ‘서울특별시 00구’를 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서울의 만만치 않은 집값을 떠올리며 오늘도 눈물을 닦았다. 어찌어찌 출근을 한 후에도 상황은 악화하였으면 더 악화하였지 나아지지 않았다. 도영은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인류애를 붙잡고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민원 업무를 보는 일을 했는데, 오늘이라고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5일을 출근 도장 찍는 단골 할머니는 오늘도 전봇대에 붙어있는 불법 전단을 신고하겠다며 도영을 괴롭혀 왔다.
“네, 할머니~ 그럼요 민원 접수됐어요.”
“그래, 꼭 접수해서 박원순이가 내가 얼마나 서울시 발전에 이바지하는지 알아야 돼. 내일 또 올 게~.”
할머니가 아무리 말해도 박원순은 꿈에도 모를걸요. 애써 뒷말을 삼킨 도영은 하품을 찍 하면서 시작까지 5분 남은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도영은 12시가 땡 하자마자 옆자리 영호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며칠 전에 생겼다는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9월을 고작 며칠 남겨두었음에도 한국의 햇살은 매우 강렬해서 도영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꽤 지친 표정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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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자신이 상대한 진상 고객들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자신을 괴롭혔다는 영호의 한탄을 배경음악처럼 흘려들으면서 도영은 은근하게 요즘 감성에 맞춘 가게 내부 인테리어에 합격점을 줬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되었다더니, 매번 가던 국밥집 때문에 한껏 낮춰져 있던 자신의 미적 기준을 단번에 끌어주는 시원한 파란색의 매장 벽과 그에 상반되는 차분한 브라운 색상의 테이블은 지친 도영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소와 다르게 눈을 빛내는 도영을 보고, 오히려 더 신난 영호가 손을 들어 주문을 했다. 떡볶이 2인분이랑 참치마요 컵밥 2개, 오뎅튀김 하나 주세요. 영호가 주문을 마치자 도영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을 찾아와 박원순에게 자신을 어필한 할머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어떻게 다른 민원거리를 가져오시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내일은 어떤 거 들고 오시려나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에요? 영호는 오늘따라 쫑알쫑알 떠드는 도영을 흐뭇한 표정으로 도영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할머님은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오셨대요, 저보다도 선배라고 할 수 있죠. 내일은 분명히 또 다른 거 찾으셔서 오실걸요? 여기는 지나가다 공사하는 걸 몇 번 봤어요, 도영 씨도 보지 않았어요? 오늘은 공사 끝났길래 들어와 본 거고요. 도영이 그냥 혼잣말로 말한 것까지 빼놓지 않고 대답을 마친 영호가 왼손으로 턱을 괴고 도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구경을 마치고 멍때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도영이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느끼고 화들짝 자세를 바로 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뇨ㅎㅎ 그냥 도영 씨가 평소랑 달라 보여서요.”
“네? 저 어제랑 똑같은데요? 아 머리는 지난주에 잘랐는데...?”
“아뇨 아뇨. 그건 당연히 알고 있었죠. 그게 아니라 오늘 같은 얼굴 처음 봐서요. 내가 알던 도영 씨 맞나 싶을 정도로.”
아니, 서 주임님이 아시던 저는 어떤 사람인데요? 도영은 애써 뒷말을 삼키고 좀 더 논리적으로 반박할 말을 떠올리기 위해 눈을 굴렸다. 곧 도영의 머릿속에 근 한 달간 흐느적대며 출퇴근을 하던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도영이 급히 반성의 말을 꺼내려 하는 순간 때마침 음식이 나왔다. 논리적인 반박은 고사하고 말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제대로 민망해진 도영은 접시에 얼굴을 고정한 채로 떡볶이에 집중했다. 혼자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다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접시에 코를 박고 떡볶이를 먹는 도영을 본 영호가 씨익 웃으면서 도영 앞으로 오뎅튀김을 밀어줬다.
“천천히 먹어요.”
“아, 네 주임님도 맛있게…?”
허겁지겁 먹다가 반대편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란 도영은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 있는 영호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아뇨 도영 씨 제가 그럴 리가요~ 어제 인스타에서 본 토끼 영상이 생각나서 그랬어요.”
“갑자기 그건 왜요?”
“그 토끼가 분홍색 밥그릇에 얼굴을 푹 담그고 먹었거든요, 아니아니 도영 씨 접시가 분홍색이어서 생각난 건 아니에요.”
갑자기 토끼 얘기를 꺼내는 서 주임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도영이 ‘분홍색 밥그릇’을 듣자마자 자신이 먹고 있던 분홍색 접시와 서 주임을 번갈아 가며 째려보았다. 도영의 살짝 토라진 표정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영호가 급하게 말을 덧붙이자 도영은 그제야 영호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당황했던 건 도영 자신이었는데, 어느샌가 쩔쩔매고 있는 영호를 발견한 도영이 쿡쿡 웃음을 참으며 기분 좋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게를 나서려는 순간, 도영 앞으로 누군가가 명함을 쑥 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여기가 낮에는 떡볶이집인데 밤에는 바(bar)거든요. 밤에 오시면 제가 칵테일 만들어드려요ㅎㅎ”
“아네, 괜찮ㅇ..”
흔히 하는 단골 영업 멘트이지만 어딘가 어설픈 남자가 건넨 명함을 쓰윽 훑어본 도영은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아니, 저렇게 왕방울만 한 눈으로 쳐다보면 거절을 할 수가 없잖아… 게다가 남자는 무의식중에 꽤나 도영과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태생적으로 잘생긴 남자에게 면역이 없는 도영의 얼굴이 슬슬 빨개지려고 시동을 거는 순간, 어느새 다가온 영호가 명함을 대신 받아들였다.
“우와 직접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네ㅎㅎ 바는 7시에 열어요. 오늘 혹시 오실 수 있으세요?”
어느새 통성명까지 마친 영호와 태용이 사이 좋게 한마디씩 주고받는 것을 조용히 듣다가 빠져나가려던 도영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태용이 꽤나 기대하는 표정을 하고 도영을 빤히 바라보자, 영호도 대답을 재촉하며 눈치를 보냈다.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침대와 한 몸이 되려고 했던 자신의 다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도영은 체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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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색한 영호와 단둘이 바에 가야 한다는 걱정도 잠시, 오후 업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도영은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겨우 할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을 하는 자신의 옆에 바싹 붙어 따라오는 영호에게 왜 따라오냐 저리로 가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도영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가게에 들어서자 낮과는 사뭇 다른 내부와 함께 오묘하게 달라진 분위기의 태용이 도영을 반겼다.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한 가게 내부와 군데군데 켜져 있는 핀 조명들이 도영을 두근거리게 했는데, 정확히는 꽤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왠지 모를 해방감 같은 것 때문이었다. 도영은 구청에서 일하기 전엔 공시를 준비했고, 일하게 된 후엔 직장과 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당연히 주말엔 집에서 자신의 미니 냉장고와 함께 성실한 침대 생활을 이어갔다. 전 남자친구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헤어진 이후로 직장 사람들과는 물론 동기들과도 술자리를 가진 것이 손에 꼽는다는 것을 깨달은 도영은 내가 이러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라는 현자 타임까지 갖게 되었다. 거기에다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저승사자가 과로사한 의사를 데리고 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며 도영의 합리화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로써 불타는 목요일을 즐겨야 할 이유-아흔아홉 가지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도영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즐기리라 다짐하며 태용이 내 준 첫 잔을 원샷했다.
“여기 생각보다 괜찮네요,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도영 씨는 어때요?”
“네 저도 여기 좋은 것 같아용ㅎㅎ”
“도영 씨, 천천히 마셔요. 이러다 금방 취하겠어요.”
도영이 앗싸리 원샷을 하는 것을 지켜본 영호가 좀 천천히 마시라며 도영을 말렸다. 도영이 태용에게 한잔 더를 외치자 돌돌이로 선반 위를 청소하던 태용이 급하게 달려왔다.
“도영 씨 괜찮아요? 아니 벌써 다 마시면 어떡해요.”
“저 멀쩡해욯ㅎㅎ 진짠데. 왜 다들 걱정하지~”
“일단 다음 잔은 논 알코올로 갖다줄게요, 잠시만 기다려요.”
태용이 물과 논 알코올 칵테일을 나란히 내려놓자, 도영은 이제서야 좀 진정한 듯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한시름 놓은 영호가 이 틈을 타 도영에게 말을 걸며 좀 더 가까이 붙어왔다. 영호는 도영의 모든 것이 알고 싶었다. 주말엔 뭘 하는지, 요즘엔 어떤 드라마를 보는지, 출근할 때 어떤 노래를 듣는지. 한 달 넘게 도영과 일하면서 알 수 있었던 건 단편적인 정보들뿐이었다. 예를 들어 오이를 먹지 않는다던가, 계란후라이 노른자를 터뜨려 먹는다는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정보들. 도영이 선을 긋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호는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은, 그 정도만을 공유하는 관계가 괜히 서운했다. 영호는 평소였다면 불편해할 도영을 위해 말을 아꼈겠지만, 오늘은 마음껏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용기를 냈다. 술을 마신 도영이 좀 더 너그러워졌길 바라면서, 또한 술을 마신 영호가 내린 귀여운 결론이었다.
“도영 씨는 구리에서 출퇴근한다고 했죠, 힘들지 않아요?”
“엄청 힘들죠. 사실 지하철만 제때 오면 좋겠어요. 그러면 엄청 힘든 건 아니고 조금 힘든 걸로 도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어제 레드벨벳 신곡 나와서 오늘은 그거 들으면서 왔어요. 주임님 이거 들어보셨어요? 진짜 노래 좋아요ㅎㅎㅎ”
도영은 묻지도 않은 레드벨벳 홍보까지 해주며 자신의 휴대폰에 꽂혀 있던 이어폰 한쪽을 영호에게 내밀었다. 적극적인 도영의 반응에 힘입어 텐션이 오른 영호가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저도 레드벨벳 좋아해요. 근데 이번에 진입 6위 했던데요ㅠㅠ 호텔 델루나 OST랑 발라드곡이 너무 세요. 그래서 저는 요즘 멜론차트 안 믿어요.”
“헐 대박 진짜요? 서 주임님 팝송만 들을 것 같이 생기셨는데. 아니 이건 욕 아니고 칭찬이에요. 콜드플레이나 포스트 말론 같은 거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ㅎㅎ”
“아니에요, 저 요즘 트렌드 따라가려고 꽤 노력하거든요. 나이가 드니까 어리고 싶어서 더 집착하게 돼요. 도영 씨도 박효신이나 아이유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레드벨벳이라니, 깜짝놀랐어요ㅎㅎ. 아 아무튼 제가 순위 밀린 게 화나서 호텔 델로나 찾아봤거든요? 근데 재밌더라구요...ㅎ… 아 그리고 전반적으로 좀 슬펐어요. 도영 씨도 봐요?”
“저 지금까지 나온 거 다 봤어요. 저 지배인 할아버지 저승 갈 때 펑펑 울었잖아요… 순돌이였나? 그 강아지가 너무 불쌍했어요.”
“맞아요, 도영 씨도 다 보셨구나. 진짜 그 장면 너무 슬프죠. 저는 늦게 시작해서 몰아보느라 주말 내내 그것만 봤어요, 침대에 누워서 몇 시간 동안 노트북만 보니까 진짜 오래 못 살 것 같아서 이번 주부터 운동 시작하기로 했어요.”
“우와 주임님 대단하시다… 저는 운동이랑 안 맞거든요. 출퇴근할 때 걷는 것만 해도 하루 할당량은 다 채우는 것 같아요.”
“도영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영 씨도 체력 기르려면 운동해야죠. 아 근데 앞으로 계속 저한테 주임님이라고 할 거예요? 저 좀 서운해지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도영과 티카티카가 잘 이뤄져서 영호는 이왕 말을 튼 김에 그놈의 서 주임님 호칭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미안 하라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눈을 축 내리고 그럼 어떻게 불리고 싶냐는 도영의 말에 영호는 또 한 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입을 삐쭉 내밀 것 같은 도영의 반응에 영호는 가장 무난한 ‘영호 씨’가 낫겠다며 한발 물러서야 했다. 사실 마음속 1순위는 ‘영호형’이었는데, 차차 바꿔가면 되니까. 도영을 놀라게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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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 둘은 태용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게를 나섰다. 활발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둘은 가게를 나선 뒤 역에 도착할 때까지 말없이 걸었다.
“도영 씨, 집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그럼요. 영호 씨도 지하철 타고 가세요?”
“아뇨, 저는 버스요.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돼요.”
“앗, 그럼 같이 걸어가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괜찮아요ㅎㅎ 도영 씨 힘든데 얼른 들어가요.”
영호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도영은 이게 꿈인가 생신가 했다. 오랜만에 술은 마셨고, 기분이 좋아서 영호와 신나게 이야기를 한 사실은 확실하게 납득이 갔다. 그런데 정확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간중간 자신을 바라보는 영호의 얼굴만 떠올랐고 구체적으로 자신이 뱉은 말은 마치 한 달 전 일처럼 흐릿했다. 말실수하지는 않았겠지… 도영은 침대에 누워 한 시간 전 일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복기했다. 내가 서 주임님한테 너무 격 없이 대했었나 내가 미쳤지 앞으로 뭐라고 불러야 하나, 진짜로 영호씨…?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영이 이불을 팡팡 차기 시작했다. 다행히 술기운은 빠르게 도영을 잠재웠고, 이불을 차다가 무의식중에 도영은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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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눈이 번쩍 떠진 도영은 어젯밤 일이 꿈이길 바라며 휴대폰 홀드 키를 눌렀다. 휴대폰 화면에는 영호의 메시지가 가득 차 있었는데, 어젯밤에 잘 들어갔냐는 것부터 몇 분 전 잘 일어났냐는 안부를 묻는 것까지 내용도 다양했다. 바닥에는 도영이 어제 발로 차 떨어뜨린 이불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모든 정황이 어젯밤 도영이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살핌에 면역이 없는 도영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네 주임님도 잘 들어가셨어요? 저도 방금 일어났어요. 라는 담백한 문자를 보낸 뒤 출근 준비에 집중했다. 대충 씻고 나와서 옷을 입고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의 역으로 향했다. 매일 타는 7시 34분 열차는 오늘도 연착할 게 뻔했지만 성실한 직장인인 도영은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소망을 갖고 매일 십 분 일찍 도착해서 열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열차가 제시간에 들어오는 것을 본 도영은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영만이 알지 못한 채로 평범했던 한국인 김도영의 일상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도영의 휴대폰이 반짝이며 도영에게 누군가의 마음을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