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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 기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저승으로 가는 리무진이 천천히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리무진의 전조등 불빛이 더 이상 눈에 비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굽히고 있던 허리를 세웠다. 아쉬움이 많은 손님이었다. 죽은 이들을 대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쓸쓸하네요, 늘 하는 일인데도. 앞으로 모아 쥐고 있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네가 정이 너무 많아서 그래. 김도영은 언제나처럼 핀잔을 주듯 입술을 달싹였다. 또 그 소리. 허, 하는 짧은 숨을 뱉어내고 리무진이 떠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을 한참 바라보았다.

 

풀벌레가 울었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려 바스락거렸다. 산 속 어딘가에 사는 새가 짙게 울었다. 저승 리무진이 예약 되어있던 손님이 떠나고 나면 늘상 있는 익숙한 정적이었다. 말은 늘 삐딱하게 해도 김도영은 언제나 내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곤 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곧장 내뱉었다. 이제 갈까요, 김도영을 바라보았다.

 

 

“서영호.”

 

 

김도영과 시선이 마주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앞에서 하늘에서 가득 쏟아져 내리는 달빛이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우리를 밝혔다. 빛에 기대어 은은하게 보이는 김도영의 얼굴은 내가 느끼던 쓸쓸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깊은 파란이 일었다. 

 

 

“나를 보낼 때는 쓸쓸해하지 마.”

 

 

 

 

 

 

김도영이 울었다. 언제나 둘이 남아 잘게 남은 여운을 정리하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앞에서 김도영은 울었다. 손님들을 태워가던 리무진도 터널 앞을 지키던 사신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도 없었다.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모든 것을 정리한 얼굴을 하고 울던 김도영은 걸어왔을 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천천히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한 발 한 발 옮길 수록 연기 마냥 흐릿해졌다. 끝내는 온통 암흑이었다. 김도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식은 땀이 이마와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커튼 사이로 아침 해가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퇴근하고 잠에 든지 두 시간만의 기상이었다. 혼자서 터널 안으로 들어가던 김도영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손바닥에도 땀이 흥건했다.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지독한 꿈이었다.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저승에 가기 전에 쉬다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호텔이에요. 서 지배인님이 전에 계시던 인간들이 쓰는 호텔도 마찬가지겠지만 여기도 최고의 서비스로 손님들을 모신다고요. 저승 가는 마지막 길 편안하게 모십니다!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묘의 객잔, 묘정관, 호텔 레빗홀. 이렇게 거쳐 왔어요, 여기.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묘정관일 때 들어와서 올해로 70 년째 벨보이로 여기 있는 중이고. 바텐더 태일이 형은 400 년, 객실장 태용이 형은 200 년째 여기 있는 중이에요. 태일이 형이 들어왔을 때도 이미 묵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으니까 엄청 오래된 거겠죠? 호텔 이름은 전부 토끼랑 관련됐던데 왜 토끼인 건지는 잘 모르겠고. 사장님은 그냥 자기가 토끼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하긴 했어요. 진짜 안 어울리지 않아요? 처음에는 죽은 사람들 거쳐가는 곳에 무슨 토끼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그런가 여기저기 토끼랑 관련된 게 좀 많아요. 지금 우리가 달고 있는 호텔 로고 뱃지도 토끼 모양이고…

 

호텔의 한 켠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정원이 점점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정원의 한 가운데에 자라있는 다 죽어가던 고목에 저번에는 잎이 돋고 그 주변에 풀과 들꽃이 나더니 오늘은 파란색 꽃 하나가 낮은 가지에 피어있었다. 그를 닮은 파란색이다. 온갖 화려한 명품과 보석을 끼고 번쩍번쩍 빛이 나게 사는 그와 다르게 작고 소담한 꽃임에도 절로 김도영을 생각나게 했다.

 

입사 초반 동혁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해주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듣기만 해도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던 것들이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을 만큼 시간도 많이 흘렀다. 수많은 손님들이 내 손을 거쳐 레빗홀에 들어왔고 그만큼 떠났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 같은 곳. 또 올게요, 같은 말이 당연시되지 않는 곳. 익숙해지던 만큼 잊어가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서영호. 나를 보낼 때는 쓸쓸해하지 마.

 

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토끼 굴의 주인. 저 고목에 꽃이 가득 피어나고 또 지면 영원히 곁에 존재할 것만 같던 김도영도 내 손으로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할 수 없게 된다면? 당장 아침에 꾸었던 꿈이 머릿속에 꽉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김도영을 이 호텔에 묶어놓고 있다는 저 고목에 잎이 나고 마냥 신나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입안에 도는 감정이 썼다.

 

 

“또 여기서 이러고 있네. 일 안 해?”

“왔습니까.”

“월급을 아주 날로 처먹고 있어, 그치?”

“이 호텔에서 나만큼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흥, 할 말이 없어지기라도 했는지 김도영은 입술을 비죽이며 고개를 팩 돌렸다. 또 정적이다. 이번에는 풀벌레도 울지 않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나뭇잎이 바스락거리지도 않았고, 산 속에 사는 새가 울지 않았다. 서로의 숨소리만 겨우 들려왔다. 김도영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고목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김도영을 바라보았다. 꽃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이 묘했다. 달빛 아래에서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그만 봐, 얼굴 닳아. 김도영이 맴돌던 정적을 깼다.

 

 

“예쁘네, 꽃.”

 

 

꽃을 보는 김도영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깊게 울렁거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발끝부터 타고 올라와 머리까지 온 몸에 가득 찼다. 이렇게 옆에 있는데. 고목에 핀 저 파란 꽃은 곧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지금 내 옆에 서서 꽃을 보고 있는 김도영과 아무 흔적 남기지 않고 혼자 떠나던 꿈 속의 김도영이 겹쳐졌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구두 끝에 고목 주변에서 자란 작은 들꽃이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아침에 흘렸던 식은땀이 다시 나는 기분이었다. 손으로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터져 나온 숨이 그새 들꽃 위로 쏟아졌는지 잘게 흔들렸다.

 

 

“마고 할멈이 보면 아주 좋아서 자지러지겠어.”

“…….”

“빌어먹을 노인네.”

“김도영 씨.”

“왜.”

 

 

김도영의 까만 눈에 내가 담겼다. 속이 울렁거렸다. 고개를 갸웃 거리던 김도영은 눈썹 하나를 들썩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너 어디 안 좋아? 죽은 것도 아니면서 안색이 왜 그래, 갑자기. 김도영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의 손이 볼을 가볍게 감싸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으면서 내 얼굴을 살폈다.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뾰족하게 솟은 눈썹과 눈에 묻어나는 걱정들이 보였다. 입이 자물쇠라도 걸린 것처럼 무거워졌다.

 

바라보는 틈이 길어질 수록 아침의 꿈에서 보았던 장면이 더욱 선명해졌다. 가슴 깊숙한 곳부터 크게 저려왔다. 작은 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순 제멋대로 구는 저 작은 얼굴을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도 꿈과 함께 선명해져 온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거 요즘에 무리해서 그런 거 아니야? 아, 이동혁 일 미루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당신은.”

“엉?”

“당신은 혼자 떠날 겁니까.”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김도영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했다. 굳은 얼굴은 얼마 안 가 그대로 일그러졌다. 볼을 감싸고 있던 손이 떨어지고 그 하얀 얼굴도 멀어졌다. 김도영 씨, 당신이 꿈에 나왔어요.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데, 나조차도 없는데 혼자 가버렸습니다, 당신이. 김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의 입에 자물쇠가 걸려버린 것 같았다. 할 얘기 없어. 잠깐의 정적 끝에 당장이라도 자리를 떠야겠다는 듯 등을 돌려버리는 김도영의 손을 붙잡았다.

 

 

“김도영 씨.”

“…….”

“…도영아.”

“…너는. 너는 꼭.”

 

 

이럴 때만 나를 그렇게 부르더라. 그는 여전히 등을 지고 서있었다.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언제나 당당하게 활짝 펼쳐져 있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붙잡은 손을 가볍게 당겨 몸을 돌렸다. 다시 마주하게 된 김도영은 나를 보지 않았다. 무얼 말해도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입술만 꾹 깨물고 있었다. 도영아. 내 이름 그렇게 부르지 마. 손에 잡힌 김도영이 팔을 비틀며 손을 빼내려 했다. 그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풀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나는 세상에서 구질구질한 게 제일 싫어. 남은 자는 마찬가지로 남은 걸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서영호. 너는 내 앞에서 절대 구질구질하게 굴지 마. 알았어?

 

언젠가 진작에 죽었어야 하지만 누군가의 미련으로 이승에서 살아있는 이를 사신을 대신해서 거둘 때, 제발 죽지 말라 우는 사람을 보고 김도영이 한 말이었다. 단호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강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저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은? 뒤로 몇 발 물러난 김도영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김도영은 내가 붙잡았던 손을 꽉 쥐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그때와 같은 대답을 해버릴 수도 있을 텐데. 김도영은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난,”

“난 당신 앞에서 구질구질해질 겁니다.”

“…….”

“당신이 떠날 때도, 지금도. 나는 그럴 겁니다.”

 

 

땅바닥만 쳐다보던 김도영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묘하게 구겨진 얼굴에 눈가가 발갛게 올랐다. 내 마지막 손님이 되겠다고 했잖아요. 김도영의 아랫입술이 꾹 짓눌렸다. 스스로 맞잡고 있는 손이 떨려왔다. 남는 것은 남은 자인 내가 감당할 테니, 아무것도 모른 채 당신을 떠나보내게 하지 마세요. 그 자리 그대로 멈춰 서있는 김도영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김도영이 울었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그가 질리도록 보아야 했던 고목 앞에서, 당신을 돌보아 보겠다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손을 잡았던 내 앞에서 김도영은 울었다. 손님들을 태워가던 리무진도 그를 데려가기 위한 사신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도 없었다. 그 까만 눈에서 조용히 떨어지는 것들을 닦아냈다. 여전히 힘을 주어 꽉 잡고 있는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그 안에서 풀어지는 김도영을 끌어왔다. 힘 없이 딸려오는 그가 품 안에 와르르 무너지듯 가득 안겨왔다.

 

 

“내가 지금 제일 구질구질 할 거야.”

 

 

김도영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아버렸다. 완전히 안겨 들어온 김도영의 허리를 감싸고 다독이듯 그의 뒷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래도 괜찮아, 도영아. 귓가에 속삭였다. 품 안에서 작은 숨이 울렸다. 나에게 너를 그리워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김도영은 한참이나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날 밤 고목의 가지에서 파란 꽃봉오리가 새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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