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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헐렁 *쟌도맠

​까꿍

민형은 울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쩌면 내게도 기회가 오겠지. 그딴 생각으로 헐렁헐렁하게 굴면 안 되는 거였다. 민형은 반드시 제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김도영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 그저 아끼는 동생 말고, 연인으로서의 사랑을. 왜냐면 김도영은 잘생긴 사람을 좋아했고, 민형은 잘생겼으니까. 게다가 귀여웠다. 자뻑이 아니었다. 그냥 자기 주제를 좀 잘 아는 것뿐이었다.

 

 

 

처음엔 도영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내 얼굴을 무척 좋아하는 형, 그래서인지 밥도 잘 사주고, 이유 없이 잘 챙겨주는 형. 그렇게 가까운 형 동생 사이로 지내다 보니 어느새 호감이 생겼다. 민형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도영의 애정에 심장이 뛰었다. 도영의 아낌없는 애정에 괜히 우쭐해졌다. 도영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사람이라는 게, 무슨 보이스카우트 배지라도 되는 것 마냥 어깨 펴고 자랑스럽게 다녔다.

 

 

 

자신이 도영에게 우선이 아니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삼월의 환상이 사월이 지나갈 때쯤 금세 깨지고 말았다.

 

 

 

 

 

헐렁헐렁

 

 

 

 

 

민형은 자신과 도영이 나름의 썸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영에게 애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이라는 애인의 연락에 도영은 민형과 일주일 전부터 잡아둔 약속을 제치고 제 애인에게 달려갔다. 도영은 상황을 듣고는 겉옷을 챙겼다. 많이 다친 건 아닌데, 좀 놀랐나봐. 그러면서 나갔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민형은 어쩐지 섭섭했다. 그래도 애인의 교통사고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도영의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건네어줬다.

 

 

 

그런데 도영에게 애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날부터 자꾸 이상한 점이 눈에 밟혔다. 가령 단둘이 있을 때도 애인과 문자를 하며 웃는다거나, 약속을 자주 미루기도 했다.

 

 

 

그때마다, 민형은 좀 울고 싶었다. 도영이 일곱 번째 약속을 미루던 날. 그 날, 민형은 처음으로 자신이 도영에게 우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치만 이민형, 릴렉스 릴렉스. 아직까진 형이 날 더 좋아하니까. 형은 잘생긴 사람 좋아하니까, 나는 귀엽다고까지 해줬잖아.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혼자 분식집 들어가 떡볶이 먹었다.

 

 

 

그러고보니 민형은 참 웃긴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았다. 어차피 도영은 민형이 우선이고,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자신을 사랑해줄 거라는. 그때 쯤 자신이 도영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형도 나를 예뻐해주고, 나도 형을 좋아하니까.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도영의 연애의 시작, 이별, 후유증은 다 민형이 떠안았다. 도영이 기쁘면 기뻐해주고, 슬프면 조용히 달래줬다. 언젠가는 김도영의 사랑을 자기가 받을 거라는 근거없는 생각으로.

 

 

 

그런데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도영이 서영호라는 남자를 데려와선 자기 남자친구라고 소개한 날. 도영은 평소와 다름없는 뽀둥 웃음을 지었다.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영호는 확실히 민형이나 도영보다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도영에겐 손을 꼼지락 거리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었다. 민형은 처음 보는 어른스러움이었다. 도영이 이제껏 사귀었던 재현이나, 유타와는 비슷한 듯 다른. 어른의 짬바.

 

 

 

셋은 같이 술을 마셨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영호에게 붙는 도영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처음 만난 사이에 술잔 기울이기도 뭐 해서 적당히 마시려고 했는데. 민형은 도영의 손을 꼭 붙잡고 부담없이 술 넘기는 영호를 보고 괜한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한잔, 두잔 기울인다는 게 만취해버렸다.

 

 

 

도영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을 때. 영호는 웃던 얼굴을 감추고, 얼굴이 빨개진 민형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도영이 좋아하는구나.”

“…….”

“아무리 도영이가 널 아낀다고 하지만.”

“…….”

“껴도 되는 곳과 안 되는 곳 구분해.”

 

 

 

그 말을 끝으로 민형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티를 안 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도영이 형 애인도 아는 내 마음을 도영이 형은 몰라주고.

 

 

 

 

 

헐렁헐렁

 

 

 

 

 

민형은 이틀 내내 울음을 참다가 주말이 되자마자 엉엉 울었다. 좀 오버해서 엉엉, 현실은 소리없이 눈물만 죽죽.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구나. 나 혼자 착각한 거구나. 바보같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자꾸 눈물이 나서 동혁을 불러다가 진라면 순한맛을 먹었다. 그 형 취향 참 마이너하네. 동혁은 매운맛 먹자며 화내지 않았다. 민형이 너무 슬퍼보이길래.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민형은 라면 한 젓가락 후룹 먹고 말을 꺼냈다. 동혁은 천천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지는 말을 끊지 않고 다 들어줬다.

 

 

 

“나는 도영이 형한테 내가 우선인 줄 알았는데.”

“…….”

“형은 막, 자기 애인 교통사고 났다고 가버리고, 애인이 보고싶다고 한 문자 보고 달려나가고.”

 

 

 

동혁은 라면 위에 김치 얹어먹으며 말했다.

 

 

 

“형.”

“엉.”

“도영이 형은 원래 잘생긴 애들 좋아해요.”

“…….”

“근데 좀 이상한 게, 잘생겼다고 다 사랑하지는 않더라구.”

“…….”

“이제노 알죠? 도영이 형이 걔 잘생겼다고 엄청 좋아했는데, 제노가 고백하니까 친한 형 동생으로 남자고 거절했잖아요.”

“…….”

“박지성한테도 귀엽다 귀엽다 하길래 다들 사귈 줄 알았는데. 안 사귀고.”

“그게 뭐야.”

“그니까, 형은 최애? 라고 하는 게 맞죠. 이제노 박지성 부류.”

 

 

 

민형은 동혁을 불러다 앉혀놓고 진라면 순한맛 먹이며 고민을 털어놓은 걸 후회했다. 최애라니. 그건 아이돌한테나 쓰는 말 아닌가. 나도 도영이 형 사랑받고 싶어. 엉엉. 나는 잘생긴데다가 애교 같은 거 안 부려도 귀여운데. 민형은 억울했다. 그치만 애인 있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울고불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니까.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훌쩍훌쩍. 애처로운 민형의 모습을 본 동혁은 교통사고 냈던 도영의 구 애인이 자신이었음을 말하지 않았다.

 

 

 

헐렁헐렁하게 굴지 말았어야 했는데. 좋아한다고 말할걸. 형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른스럽게 먼저 좋아한다고 해볼걸. 영호인가 영훈인가 그 형아만큼 어른스럽지는 않더라도. 민형의 나름대로 어른스러운 고백이라도 해볼걸. 민형은 그냥 코 훌쩍이며 진라면 순한맛이 담긴 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일부러 후룹후룹 먹었다. 사랑 때문에 훌쩍거리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일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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