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불면이 종식하는 곳

​김마죠리카

* 실존하는 국가, 종교 및 신앙과 아무런 관련 없이 창작된 가상의 배경입니다.

 

 

  

   맑은 날에도 천둥이 울게 하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의 눈썹이 작게 구겨졌다. 이내 표정을 바로 한 황제는 기침으로 목소리를 고르고 차분히 가라앉은 말로 그게 무슨 소리더냐 되물었다.

  

   “예, 폐하. 황송하오나 말씀 올린 그대로입니다.”

   “내가 진정 너의 처소에 와이파이를 죄다 끊어야 바로 말하겠느냐?”

   “그, 그게 아니옵고….”

  

   평소라면 예끼 자식아 한 번 물을 때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꿀밤이라도 쥐어박았을 황제는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심각한 목소리였다. 행정, 입법, 사법 모든 권한에 손을 뗀 채 허울만 남은 황실이라 할지라도 황제는 황제인 법이었다. 이렇게 위엄을 드러낼 때면 황실에서도 불가침인 제사장을 맡아온 도영마저도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도영은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진실만을 이야기한 잘못 밖에 없었다. 와이파이 끊는 건 심하잖습니까…. 한 풀 꺾였다지만 그래도 저보다 족히 세 배에서 네 배는 더 산 황제의 팔뚝을 부여잡고 잉잉 떼쓰는 건 또 이 나라에 김도영 한 명 뿐일 것이다. 황제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얘가 또 이러면 이러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태자가 천둥을 부른다는 말이냐, 아니면 천둥을 부린다는 말이냐.”

   “부린다는 말이옵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한 나라의 황제가 되실 분이.”

   “네가 쓸데없이 말을 돌리니 늙은 나를 놀리는 것으로만 들리는구나.”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선친들이 모두 그러했듯 황제 또한 자신이 살아있을 때 황제 자리를 태자에게 계승하고 여생을 조용히 보내려는 준비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황위를 계승할 친자식이 없었던 황제의 친 조카를 황태자로 책봉하려고 했으나, 태자 책봉일 사흘 전에 황비가 황제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황제의 늦둥이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저보다 열 살이 많은 사촌 형을 밀어내고 황위 계승 서열의 1순위가 되었다. 멀끔한 청년으로 자란 황태자는 훤칠한 용모와 담대한 말투, 해맑은 웃음, 무표정일 때의 적당한 카리스마. 이런 것들을 모두 갖춘, 어디 내놓기에 흠 잡힐 곳이 별로 보이지 않는 황위 계승자였다. 나이가 조금 어린 게 걸린다는 황실 내각의 의견이 있었지만 정작 결정권을 가진 황제는 나이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흠이 아니게 된다고 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황위 계승식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이 시국에, 도영은 갑작스레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보좌 인원들이 계승식 때 맬 넥타이의 색깔과 무늬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곧 물러날 황제가 머무를 휴양지로 타고 가야 할 차량, 그 날 저녁부터 밤새도록 드려야 할 기도…. 하늘의 뜻에 따라 황제를 보필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대대로 맡아 뿌듯한 건 사실이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사소한 게 대단한 운을 좌우한답시고 고작 스물 몇 살 먹은 제사장에게 저들이 결정 못 하는 걸 죄다 들고 와서 정해달라고 했고, 도영은 황궁에서 생활해온 평생 내내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야 했다.

  

   도영은 천둥을 울게 하리라는 자신의 말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끈질기게 물어오는 황제를 모셔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황제는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이 자리에서 설명하면 될 것을 왜 그까지 귀찮게 끌고 가냐고 했지만 가자는 대로 잘 따라왔다. 혼자 머무르는 처소에는 아무도 없이 조용한 게 정상이겠지만, 방에서 희미한 소리가 새어나오는 걸 도영만이 알아듣고 작게 한숨을 쉬며 황제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보였다.

  

   “도영이 형, 어디 갔다가 이제….”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 말고 문 열리는 소리에 반가워 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쑥 빼서 문 쪽을 내다보는 차기 황제…. 황태자. 본인이 머무르는 동궁 권역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고 별궁까지 몰래 행차하신 사실을 들킨 표정이 참 봐줄만했다.

  

   “욱희, 너 이 녀석….”

   

   황제는 그곳에서 마주친 뜻밖의 얼굴에 이마를 짚었다.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슬쩍 모니터와 스피커 전원을 내린 황태자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도영의 옆에 붙어 서서는 황제의 눈치를 살피느라 진땀을 뺐다.

  

   “욱희 너는 나가보거라. 나는 제사장이랑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네, 아바마마.”

   “넌 좀 이따 보자.”

  

   도영은 저러다 한번 걸려서 혼날 줄 알았지 작게 혀를 쯧쯧 차며 다 스러져가는 향 옆에 새로운 향을 꽂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아까 황태자가 앉아서 한창 게임하던 의자를 내어줬다. 의자에 앉은 황제는 어서 마저 이야기 해보라며 도영을 닦달했다.

  

   “천둥을 부린다는 말은, 별 다를 건 아니옵니다만….”

  

   말을 괜히 얹었다 오해나 사지 싶어 도영은 보여주기로 한 것을 먼저 황제에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처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작은 제단은 피어나는 향 연기로 흐릿했지만, 탱화에 그려진 갖은 신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황제의 눈에 들었다. 도영은 그 신들을 하나하나 가리켜 이름을 알려줬다. 이 분은 위타천, 그리고 이 분은 지동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영이 가리킨 신은 천존이었다. 천존은 구름을 허리에 감은 용이 그려진 화려한 갑옷에 커다란 천월도를 뒤로 차고 있었다. 황제는 천존의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천존을 보여드리려고 폐하를 이리 누추한 곳까지 모셨습니다.”

   “누추는 무슨, 루카스도 매일같이 와서 놀다 가는 곳인데. 쓸데없는 말 붙이지 말고 할 말을 하거라.”

  

   도영이 천존이라 일러준 신의 그림은 꼭, 몇 주 뒤면 황제가 될 황태자, 루카스를 보고 그린 것 같았다.

  

   “저야 워낙 어릴 때부터 욱희를 보고 자라왔으니 잘 몰랐지만, 태자께서 열여덟 살이 되는 해부터 꼭 저는 태자를 볼 때마다 문득 천존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래, 그래서 네가…. 계속 말해보거라.”

   “천둥을 부린다고 말씀드렸지요. 천존은 하늘을 부립니다. 감히 눈을 마주치기에도 두려운 존재지요. 그러나 땅에 사는 것들이 말라가면 비를 내리고 추워하면 해를 내주는 것이 천존입니다.”

   “꼭 나를 안심시키는 말로 들리는구나.”

   “안심은 폐하께서 진정 마음이 놓여야 하시는 것이지요. 저는 다만,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천존의 이(理)를 받았다면, 욱희는, 아니 루카스 황태자는 천존의 기(氣)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황제는 도영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욱희는 제가 주제 넘게 장담컨대, 훌륭한 황제가 될 것입니다.”

  

   할 말을 마친 도영은 꺼진 촛불을 찾아 라이터로 불을 켰다. 황제는 듣고 싶은 말은 다 들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있던 자리에 밀어넣었다. 도영이 네 말솜씨는 언제나 제국의 보물이로구나. 칭찬인지 아니면 비꼬는 건지 모를 말을 하는 황제의 표정은 어쩐지 아까의 걱정을 어느정도는 덜어낸 것처럼 조금 후련해보였다. 강녕전으로 되돌아가시는 길을 모셔다 드리겠다며 도영이 뒤따라 나왔지만, 황제는 됐다는 듯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휘휘 저었다.

  

   “그리고 도영아. 기왕이면 루카스라고 확실하게 부르거라. 황위 계승을 준비한지가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그리 헷갈리느냐.”

  

   그러다 멈칫 서서는 도영에게 짐짓 엄한 소리로 황제가 말했다. 도영은 방금까지 자기가 황태자를 태자 욱희 루카스 제멋대로 불러댔던 걸 깨닫고 살짝 움츠러들어서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저 필요할 때나 예의 차리는 척 하는구나. 둘이서야 어찌 부르든 나는 모르는 일이고. 남이 들을 때 말이다.”

  

   밖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던 비서실 사람들이 황제를 모셔 떠나는 뒷모습에다 대고 도영은 안녕히 가시라고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그 뒷모습이 별궁 뜰을 돌아 나가서 보이지 않을 때서야 고개를 든 도영은 처소 뒤편을 향해 대뜸 외쳤다.

  

   “욱희, 너 아직 여기 있으면 어떡해?”

   “형. 나 오늘도 자고 가도 돼?”

  

   세상 편하고 넓은 자기 침대 두고 왜 굳이 둘이 자면 비좁아 터질 도영의 침대를 고집하는지. 아무리 천존과 꼭 빼닮아 그 기세가 하늘을 부릴 것에 틀림없다 했지만 결국 귀한 자식이라 오냐오냐 자란 어린애나 다름없는 욱희가 폐하처럼 위엄있게 황좌에 앉아있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주제까지 넘어가며 루카스가 훌륭한 황제가 되리라 장담했던 도영은 자꾸 한숨이 나왔다.

  

   루카스는 향 냄새가 좋다고 했다. 요즘은 향초나 디퓨저 같은 것도 많은데, 구태여 상갓집이나 절에서 쓸 법한 녹색의 보잘것없이 가느다란 향을 태우는 냄새가 좋다니. 한 나라의 황제가 될 몸이 취향 하나는 참 소박하다, 소박해. 자기 침소에도 향을 피워 달라 할까 혼잣말 하는 녀석의 엉덩이를 손등으로 툭 치고 그런 걸 아무데서나 함부로 피우면 재수 없어져서 안 된다고 슬쩍 퉁박을 놨다. 여기서 잘 거면 옷이라도 챙겨오던지. 루카스는 도영이 뱉은 한 마디에 해사하게 낯빛을 밝히고 당장 보이는 수행원을 몰래 불러다가 필요한 것을 조용히 챙겨달라고 부탁하고 입단속도 철저하게 시켰다.

  

   “욱희. 아직도 잠을 잘 못 자는거야?”

   “응. 지금도 그런데, 강녕전에서 앞으로 평생 잠을 청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막막해.”

  

   루카스는 달마다 키를 한 뼘씩 키워오던 중학교 시절부터 얕은 불면증에 늘 시달렸다. 천존을 모시기 전부터도 상주 의관으로 근무했던 어머니 따라 황실에서 자란 도영은 루카스를 몇 년 터울의 동생으로 내내 지켜봤기 때문에, 루카스가 혼자 사용하는 넓고 적막한 동궁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나이와 답지 않게 의젓하다, 진정 제1 황위 계승 서열에 들어맞다. 그런 말을 들으며, 그리고 그런 말에 부합하려 무던히 노력한 것은 욱희를 불쑥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욱희는 그만큼이나 도영의 곁이 아닌 이상에야 잠조차 쉬이 들지 못할 만큼 고민이 많았다.

  

   현재의 황실은 행정, 입법 내각에 아무런 권력도 행사할 수 없이 무형 문화재처럼 보여주기 식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 행정부와 입법부보다 몇 곱절이나 긴 세월을 거쳐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없는 황실의 입장을 정재계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 보통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이에 대해 크게 부정적인 여론은 없었지만, 새 황위 후계자 발표 회견 때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루카스는 톱스타 연예인 그 이상의 유명세와 화제, 인기를 몰고 다니게 되었다.

  

   그에 따라 황실에 대한 관심도가 가장 높아졌을 시점에 일부 극단적 반 입헌군주제 세력에서부터 ‘사실 황실이 저들 입맛에 맞춰 뒤에서 조종하듯 국정이 돌아간다.’하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황실에서는 이런 소문에 대응하려 황실 재정 규모를 줄이고 황제의 퇴위가 결정된 시점에 기해서 상주 인원을 감축하는 등의 투명한 모습을 내세우려 했지만 이미 그 소문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확실한 증거도 없는 소문으로 황실이 여태까지 굳건하게 지켜온 입지와 권위가 흔들릴 일은 없었지만 황제도, 그리고 황태자도 이것을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 그 해결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런 소문 때문일지는 몰라도, 황제는 ‘나도 슬슬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구나.’라고 한숨을 푹 쉬곤 하는 일이 잦아졌다. 도영 또한 처음 황제가 루카스에게 황위를 넘기겠다는 일로 자신에게 자문할 때, 사실 천존은 이에 대해서 특별히 얹은 말이 없었지만 그저 지쳐 보이는 황제의 얼굴 주름을 바라보며 그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도 그런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루빨리 황위에 적합한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제 나이보다 빨리 황위 후계자에 적합한 인물로 성장한 것이었다. 다달이 키를 한 뼘씩 키워오던 때처럼 갑자기 성장하려면 성장통도 자연스레 동반되는 법이지만 루카스는 그마저도 티를 내질 않고 의연한 모습만을 사람들에게 보였다. 루카스가 그런 의연함을 내버리고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곳은 도영이 있는 별궁 뿐이었다.

  

   “욱희, 황제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마냥 도영과 눈만 마주쳐도 반가워 못 견디겠단 듯이 활짝 웃어대던 루카스는 요즘 얼굴에 못 보던 심각함이 자꾸 묻어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별궁에서 자고 가겠다는 욱희를, 안그래도 요즘 들어 걱정거리에 찌든 것 같은 욱희를 옆에 눕혀둔 채 그냥 잘 자라 하고 재우기에는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안 돼서 모르겠는데.”

   “그럼 지금 기분은? 무슨 생각 해?”

   “무서운 꿈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

   “누구한테?”

   “천존.”

   “천존은 그런 말 안 들어주셔.”

   “형이 부탁해도?”

   “그런 건 부탁하지도 않을 거고, 들어주지도 않으셔. 이유가 있어 꾸는 꿈이야. 황제가 될 사람이라면 악몽 정도야 무릇 견뎌야지.”

  

   루카스는 별 대답 않고 그냥 도영이 등을 토닥여주는 대로 한 뼘 낮게 자리 잡고 누워 숨을 골랐다. 매달아둔 방울이 창으로 드는 바람에 흔들려 잔잔히 방울소리가 울리기도 했고, 환기시킨지 얼마 되지 않아 향 냄새도 미처 다 빠지지 않았지만 욱희는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금세 잠들었다. 무서운 꿈을 대체 얼마나 자주 꾸기에 기도까지 하나 했는데 그런 기척도 없이 잘만 잤다. 도영은 욱희가 잠에 드는 와중에도 꼭 자신을 붙들어 놓듯이 제 허리를 한 팔로 안아 당기는 데 신경이 쓰여 욱희보다 반 시간은 더 늦게 잠들었다. 그런대로 익숙하고 또 드문 밤이었다.

  

   도영이라고 천존에게 욱희가 꾸는 무서운 꿈에 대한 것을 물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누워있는 자신의 눈앞으로 세상 모든 단단하고 무거운 것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꿈. 손가락 까딱 못하고 그 모든 것들에 온 몸이 짓눌리기만을 기다리다가 무언가가 콧잔등을 꾹 눌러 내리려고만 치면 번뜩 눈이 떠진다고 했다. 새 황제가 될 녀석이 마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과 같아 제대로 된 군주의 재목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천존은 ‘때가 되면 알게 된다.’라고만 할 뿐이었다.

  

   결국 도영은 욱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뭘 해주려 치다가도, 악몽이야 뭘 지금은 황위를 물려받기 직전인데다가 신경쓰이는 일이 많아서 그렇지. 그것들이 다 해결되고 익숙해진다면 자연스레 사라질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정말로 자신이 욱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찌르듯 느껴져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황위 계승식으로 향하기 직전에 욱희는 너무 긴장되어 도영을 보고 가야겠다며 직접 별궁까지 달려왔다. 도영은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진행해야 하는 황궁 내 기도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분명 여느 일정보다 훨씬 신경 써서 단장을 시켜 놓았을 욱희는 꼭 도영이 봐주길 바라는 것처럼 견장을 비뚤게 차고 있었다.

  

   “많이 긴장되지?”

   “아니, 그냥 형 보고 싶어서.”

   “태자라고 부를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형이 존댓말 하는 걸 보니까 그런 것 같네.”

  

   비뚤어진 견장을 바로 하고 그새 일부러 헝클기라도 한 것 같이 한 가닥 흘러나온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용안에 이리 함부로 손을 대다니, 무엄하구나. 장난으로 하는 말인 건 잘 알았지만 짐짓 낮게 깐 목소리가 제법 진지한 게 얘가 진짜 황제가 되긴 되는 건가 하는 실감이 났다. 광택이 날 정도로 빳빳하게 다려놓은 제복에는 금실로 구름을 허리에 휘감은 용 모양의 문장이 수놓아져 있었다. 도영이 며칠 밤동안 기도를 올리며 직접 초를 입힌 금실로 천존의 갑옷과 같은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것이다. 어깨를 펴고 곧게 선 욱희는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당연히 한 나라의 황제이겠거니 할 정도였다. 도영은 그 용모에 비교해 자신이 입은 허여멀건 빛깔의 무복이 처음으로 조금 창피해졌다.

  

   천존은 옷에 붙은 티끌을 털어내고 비뚤어진 견장을 바로해주며 욱희를 챙기느라 분주한 도영의 등 뒤에서 ‘조막만하고 철이라곤 없어 뵈던 꼬맹이도 잘 키워서 씻기고 입혀 놓으니 제법 군주의 태가 나는구나.’하며 작게 웃었다. 도영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지만, 잠깐 천존이 하는 말에 정신이 팔린 도영의 눈치를 보았는지 아니면 정말 천존과 기를 통해 알아차린 것인지 욱희가 먼저 도영에게 물어왔다.

  

   “천존께서는 뭐라고 하셔?”

   “제법 황제 태가 나는 게 썩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야.”

  

   앞의 말을 잘라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도영이 너의 말솜씨로 보아 너는 내 시절에 태어났다면 무당이 아니라 대당 사신으로 적격이구나. 황제가 꾼다는 꿈의 해몽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천존에게 쌓인게 많은 도영은 못 들은 척 그 말을 넘겼다.

  

   욱희는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 즉 황비의 반지를 도영에게 맡겼다. 황위 계승식 때 황제의 반지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면서. 어차피 황제의 반지는 다른 손가락에 끼는 건데 왜 굳이 빼서 나한테 맡기는 거야? 꼭 프러포즈 하듯이 도영의 손가락에 직접 반지를 끼워주는 욱희는 입꼬리만 올려 조용히 웃기만 했다.

  

   “이제 가야겠다. 형도 준비 끝내고 좀 쉬고 있어.”

   “그래.”

   “황제가 되어서 돌아올게.”

   “어련하시겠습니까, 태자저하.”

  

   황위 계승식이 시작되었다. 총리와 대법원장, 각계 주요 단체의 인사, 기자, 그리고 계승식 참관 추첨에 성공한 일반 시민들 등의 사람들로 근정문 앞이 가득 찼다. 도영은 욱희가 황제의 양위를 상징하는 황실 옥새와 시계, 그리고 지팡이 하례를 받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이 입은 새하얀 무복은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저 사람들 틈에 몰래 끼어들어 구경하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못하게 했다. 대신 즉위식을 생중계하는 방송을 틀어놓고 기도 행사 준비를 마무리했다.

  

   비록 화면 너머로 보고 있지만 욱희는, 루카스는, 정말로 그곳에서 가장 빛났다. 욱희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선대 황제의 화상에 큰절을 올리고 일어났을 때는 그 모습에 황제가 무릇 가질 담대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기도 준비를 함께 하던 별궁 직원 하나가 도영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태자께서 황제가 되시면 제사장님도 좀 심심하시겠네요.”

   “네?”

   “매일같이 놀러오지 않으십니까, 두 분이 워낙 오랜 벗이기도 했고.”

   “그렇긴 할 것 같네요. 황제가 되면 잘 오지도 못할 테니까….”

  

   새 황제를 맞이한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근정문 앞이 가득 메워졌다.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황궁 상주 인원을 제외하고는 출입조차 어려운 이곳 별궁과는 꼭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루카스는 오늘로 황제가 되고, 정말로 다른 세계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별궁 뜰에도 기도를 올리기 위해 온갖 음식을 차려 놓았지만, 도영을 빼고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바치는 잔칫상은 쓸쓸히 놓인 채로 식어가고 있었다. 꼭 그 꼴이 제 처지 같아서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도영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넓고 펄럭이는 활복 소매를 틀어쥐고 신칼을 닦는 일에 애써 집중했다.

  

   즉위식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로 가득 찼던 황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소의 고요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별궁 뜰로 루카스와 선대 황제, 그리고 황궁 내각 사람들이 모였다. 보통 계승식과 즉위식 기도에서는 황족의 직계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 관례이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어린 황제의 직계 가족이라곤 아버지 뿐이었기 때문에 제법 너른 별궁 뜰이 조금 허전했다.

  

   “형, 나 오늘 잘 했지?”

   “준비 하느라 못 봤어.”

   “방송으로라도 봐주지….”

  

   사실 준비하는 동안에도 계속 곁눈질로 계승식 생중계를 보긴 했지만 곧이곧대로 너 정말 잘했어, 네가 그곳에서 제일 빛나더라.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평소같이 편한 말을 나누는 것도 그 계승식이라는 걸 하고 왔다는 이유로 눈치가 보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소곤거려야 했다.

  

   “보나마나 넌 잘 했을 거야, 나는 안 봐도 알지.”

  

   욱희는 그 말을 듣고서야 만족한 듯 물러서서 제 자리로 돌아갔다. 계승식은 전통대로 음력 보름이었다. 보름달이 별궁 뜰을 바로 비출 때, 모든 조명을 끄고 그저 촛불과 달빛에 시각을 의지한 채 본격적인 기도가 시작되었다. 도영이 입은 새하얀 무복은 달빛을 그대로 머금은 모양이 꼭 은실을 옷감에 숨겨둔 것처럼 반짝였고, 그것과 같이 도영이 쥔 신칼의 날도 섬뜩이 번쩍였다. 칼에 달린 금속 장식과 술이 도영이 움직이는 선을 따라 움직였다.

  

   루카스가 도영이 굿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어릴 적 도영보다 한 대 앞의 제사장이 오색찬란한 무복을 입고 춤 추는 모습은 본 적이 있지만, 너무 어지러워서 멀미가 났던 기분밖에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도영은 아무도 자신의 옷차림을 더러 지적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는 듯 모두가 정장 차림으로 드나드는 황궁에서 거의 유일하게 매일같이 아디다스 츄리닝 같이 편한 차림으로 살았고, 루카스가 보아온 모습도 대부분 그랬다. 그런 도영이 무복을 입은 모습은 루카스를 넋놓게 만들기 충분했다. 도영의 몸짓을 한 박 늦게 따라가는 옷자락이 허공을 가르고 흘렀다. 루카스는 자신의 황위가 무탈하고 안녕하기를 비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도 잊은 채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달이 산을 넘고 해가 고개를 내밀어서야 기도가 끝이 났다. 아마 도영 평생에 새 황제를 위해 굿할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게 분명했다. 도영은 굿을 끝내고 진이 다 빠져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한 채로 제 처소에서 잠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욱희도 그 자리가 정리되는 시간 쯤 눈치를 보다가 도영의 처소로 쫓아 들어가서 같이 자자고 해도 될 일이었는데, 그 날만큼은, 그리고 그 날부터는 쉽게 그럴 수 없었다. 이제 비서실, 경호실, 내각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향해 있었다. 도영에게 오늘 고생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황제가 잠을 자는 강녕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황제가 된다는 건 욱희에게 그런 것이었다.

  

*

  

   루카스는 황태자 시절 지냈던 동궁에서보다 더 심각한 불면증을 겪어야 했다. 황제의 침소인 강녕전은 황궁 안에서 가장 천장이 높은 건물 중 하나였고, 루카스의 말로는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천장이 어디쯤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고 한다. 생전 강녕전에 발 들일 일 없는 도영은 천장 높이가 욱희의 불면증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응, 응 그렇구나. 그러고 말았다.

  

   “정말 천존께서 아무 말씀 안 하셔?”

   “폐하께서 자꾸 별궁에서 주무시겠다 들리는 게 썩 다른 이들에게 좋아 보이지는 않을 거라고만 말씀하십니다.”

   “형, 나 어제는 두 시간도 제대로 못 잤어…. 오늘만 형 방에서 자면 안 돼?”

   “우리 욱희, 혼자서는 무서워서 잠도 못 자는 황제라고 소문이라도 낼까보다.”

   “짐을 모독하려 하다니, 무엄하도다.”

   “황송하옵니다.”

  

   천존의 특별한 살핌을 받는 루카스가 별 재수 없는 일을 당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루카스는 늘 정해진 일정처럼 도영을 찾아 별궁에서 잠을 잘 수 있을지를 청해왔다. 혼기가 다가오기 전부터 황제의 그녀는 누가 될 것인가 따위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황궁 안팎으로 넘쳐났기 때문에, 도영은 이런 관심으로 인해 루카스가 쓸데없는 오해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루카스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황위 계승을 반대했던 보수 내각 인사들이나 황실 방계 사람들은 흠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고 루카스를 예의주시하는 걸 도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처소를 찾는 루카스를 조금 단호할 정도로 거절하고 되돌려 보내는 일이 많았다.

  

   다만 강녕전에 머무른 이후로 정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기가 역력한 욱희를 한 번의 예외 없이 매번 내칠 만큼 매정하지는 또 못했다. 그래서 도영은 아주 가끔씩만 욱희를 자신의 침대에서 재웠다. 그런 날은 도영은 욱희가 잠들고 난 뒤에 침소를 빠져나와 바깥에서 기도를 하거나 밤 산책을 하는 등 욱희의 옆자리가 아닌 곳에서 밤 시간을 오롯이 보냈다. 더이상 황제 등을 토닥여 아기 달래는 마냥 재울 수는 없었다.

  

   욱희가 매번 무서운 꿈을 꾸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아무리 물어도 천존은 비협조적으로 굴어왔다. 그러나 아주 오랜만에 욱희를 별궁에서 재운 날, 당연스레 밖으로 나온 도영에게 천존이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때가 되면 알게 된다고 했지, 그 때가 점점 다가오는구나.」

  

   알게 되는 거라면 미리 좀 알려주시면 뭐가 덧나나요? 천존은 그 이상은 묵묵부답이었다. 신 괜히 받았어. 팔다리 뜯어내는 무통 겪어가며 꿈도 미래도 포기하고 신 받으면 뭐해. 궁에서 밥값 못하고 쫓겨나라는 건가, 아님 욱희한테 미안해 죽으라는 건가. 궁에서 쫓겨나고 그러면 천존께서 그리 좋아하시는 욱희도 다신 못 볼 텐데…. 도영은 천존이 들으라는 듯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사람들은 불면증도 감기 기운도 없는, 건강하고 젊은 황제를 사랑했다. 물론 매번 정재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황실과의 연관성을 억지로 찾아 붙여 모함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으나 루카스의 힘은 그것보다는 훨씬 강했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그저 휴양지에서 여유나 부리고 있을 테지만, 어쨌든 재위 기간 동안은 그렇게나 대단했다고 평가받는 선대 황제만큼 루카스는 탄탄한 지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상관 없이 황실에 대한 루머는 계속해서 떠돌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도 여전히 많이 존재했다.

  

   강녕전에서 생활한지 몇 달째가 된 욱희는 그 무서운 꿈이라는 것의 내용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해간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누워있는 얼굴로 쏟아져 내리더니, 자신의 시야로 가까워지는 그것이 바로 용 모양의 장식이 붙은 천장 대들보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눈을 감기만 하면 시작되는 맥락 없고 공포스러운 꿈은 계속해서 루카스를 괴롭혔다.

  

   도영은 단연 자신이 해결해주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유난히 말을 아끼는 천존이 더더욱 원망스러워졌다. 그리고 수면제를 먹어가면서도 잠이 모자랐던 루카스는 눈에 띄게 얼굴 살이 내렸다. 본디 깎아지른 것처럼 곧고 날렵한 턱선이 그로 인해 더욱 또렷이 드러났고,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황태자 시절보다 훨씬 진하고 어른스러운 인상을 풍기기 시작했다고 좋아하기나 했다.

  

   자주 허락해주지 않는 다는 걸 잘 알고, 또 그런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도 잘 알지만 어쨌든 루카스는 여전히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루 걸러 별궁을 들렀다. 오늘은 자고 가도 되지? 안 돼. 이런 대화 뿐이라도 루카스는 그냥 그곳에서 도영과 잠깐이나마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동안 표정에 가득 든 힘을 풀고 쉴 수 있었다.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루카스의 인상이 더 수려해졌다는 것은 도영이 보기에도 맞는 말이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도영으로서는 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걱정하는 와중에도 도영은 그저 욱희의 드러난 턱선을 손가락으로 쓸어주고, 건강을 잘 챙기라는 잔소리만 할 뿐이었다.

  

   “밥이라도 좀 많이 챙겨먹어, 살이 자꾸 빠지네.”

   “형은 내가 언제 밥 적게 먹는 거 봤어?”

   “그렇지, 그러네. 그래서 더 걱정돼.”

  

   자주 제사장을 찾는 황제의 행보가 결국 황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어디서나 당당했고 평소와 다를 만큼의 큰 걱정거리도 없어 보였던 황제가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어 왜 제사장을 저리 찾는지 궁금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도영과 함께 오래 일했던 별궁 사람이 이런 분위기를 도영에게 귀띔해준 이후로, 도영은 욱희가 별궁을 자주 찾아오는 일도 삼가라고 일렀다. 애초에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제사장에게 황실 대소사 자문을 하는 것에도 못마땅한 시선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루카스를 오해의 원천에서 애초부터 떨어트려 놓는 것이 낫다고만 생각했다. 일각에서는 어릴때부터 친했던 둘 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지 넘겨짚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잡신도 아니고 천존을 받은 제사장은 천존이 상대방을 점지해주지 않는 이상 결혼은커녕 연애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건 대부분이 아는 상식선의 이야기라 그 추측은 추측으로만 끝이 났다.

  

   그런 오해까지 받는 마당에 욱희를 자제시켜야 맞는 일이지만, 그저 밀어내고만 있기에는 욱희가 기운빠진 모습이 안쓰러워 견딜 수 없기도 했다. 잠자코 있는 천존이 미워서 오름굿을 하겠다고 협박이라도 해야 할까 하다가 천 몇 백 살은 족히 먹은 천존이 그런 것에 끄떡이나 할까 싶어 그런 생각도 접었다.

  

   루카스가 도영의 말에 따라 별궁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야말로 도영이 황제와 마주칠 수 있는 기회는 다른 사람들을 대동한 공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평소처럼 자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루카스가 요즘은 꿈을 꾸지 않고 잘 자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는 좀 애매한 자잘한 걱정거리는 없는지 알 길이 없었다.

  

*

  

   새 황제가 처음으로 맞는 겨울이었다. 작년에 비해 유난스레 귀를 에는 밤바람이 더 이른 시간부터 드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악몽을 비롯한 황제의 일에 대해서 제멋대로 입을 꾹 다물기를 고수했던 천존이, 그 날은 느닷없이 도영이 묻기도 전에 먼저 일렀다. 

  

   「오늘 황제를 불러 이곳에서 재워라. 도영이 너로 하여금 내가 직접 현신하여 할 말이 있으니 황제를 부르는 일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도록 하고.」 

  

   그리 시키는 전후 과정도 이유도 붙이지 않았지만 도영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천존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한 번쯤은 욱희가 별궁에서 자고 갈 때도 되었지. 욱희를 어릴 때부터 돌봐온 얼굴 익숙한 경호실 인원에게 부탁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데려올 계획까지 세웠다.

  

   사실 여태 욱희가 찾아올 때마다 싫다 안된다 해놓고서는 갑자기 자기가 부른다고 해서 황제가 순순히 따라오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나 이제 여기서도 잘 자는데. 형 침대 좁아서 싫은데. 형이 안 된다면서 갑자기 왜 그래? 어찌 황제를 마음대로 오라가라 한단 말인가? 이런 말을 할 상황까지도 다 예상해놓고, 싫다 그러면 오랜만에 천존을 좀 팔아먹어야지 결심도 했다.

  

   “진짜? 왜? 갑자기? 진짜 가도 돼?”

   “이런 반응일 줄은 몰랐는데…. 일단 얼른 가자.”

  

   미리 부탁해놓은 경호원이 마련한 뒷문에서 이어지는 길로 욱희를 데리고 나왔다. 욱희는 싫다 어떻다 말도 않고 쏜살같이 따라나와서 천존을 팔아먹을 필요도 없었다. 잠옷 차림으로 베개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들뜬 이 녀석이 황제라고. 도영은 그저 저 으리으리한 강녕전에 비하면 별 볼일도 없는 조그만 자기 방에 불러다가 자고 가도 좋다고만 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훨씬 들떠있는 욱희를 보며 여태까지 욱희를 오지 못하게 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냥 눈치 좀 보고, 좀 더 뻔뻔하게 굴고. 오해 생기면 아니라고 우기고. 그렇게 해서라도 좀 데려다 몇 번 더 재워줄 걸.

  

   제 침대에 풀썩 넘어지듯 누운 욱희를 두고, 도영은 천존의 현신을 받기 위해 다시 한 번 깨끗하게 세신했다. 천존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기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신을 부탁한 적은 선대 황비의 장례식 이후로는 처음이라 알아서 긴히 할 말이 있겠지 여기며 군말 없이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천존은 돌연 현신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은 새벽 기를 받아 궁궐 북편의 선산으로 마실을 다녀올 테니, 기왕 데리고 온 거 저 꼬맹이 황제 녀석 잘 데리고 놀다 자기나 하라고 했다.

  

   “왜 형은 굳이 나를 불러놓은 다음에 씻어? 그러면 나 설레는데.”

   “그런 소리 함부로 좀 하지 마, 황제씩이나 되어가지구.”

  

   식겁한 도영이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가 한 발짝 떨어져 섰다.

  

   “냄새 좋다.”

  

   루카스는 도영의 잔소리가 더 이어지기도 전에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앞에 선 도영을 당겨서 껴안고 마른 배에 코를 묻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현신 받겠다고 준비하느라 입은 얇고 깨끗한 옷 너머로 욱희 얼굴이 폭 닿아있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같이 자는 것도 이상하게 오랜만이다, 그치?”

   “그야, 형이 매일 안 된다고 했잖아.”

   “황제가 어떻게 매일 남의 침소에서 잠을 자. 혼인할 사람한테도 그리 안 하는 걸.”

   “오늘은 왜 되는 거야?”

  

   도영의 침대라면 머리 대자마자 잔뜩 잠이 쏟아지는 눈으로 형 나 너무 졸려 거리면서 도영의 팔이나 등에 대고 머리를 부벼야 할 녀석인데 오늘따라 눈이 말똥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몰려드는 잠보다 더 많은 모양이었다. 거기다 대고 따로 꾸민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도영은 황제에게 사실 그대로를 고했다.

  

   “천존께서 내 몸에 현신해서 우리 폐하께 올릴 말이 있다고 하시네.”

   “그러…면…. 지금 형이 아니라 천존? 천존님? 인 거야?”

   “아니, 아니. 근데, 갑자기 현신은 하기 싫대서. 그냥. 원래 늘 제멋대로이셔.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그냥 자고 가면 돼. 끝.”

   “그럼, 형이 원해서 나를 부른 건 아니라는 거지?”

   “아냐. 그냥, 욱희 너도 요즘 피곤해 보이고. 나도 혼자 자면 좀 심심하고, 그래서.”

   “응, 그런 이유면 나도 좋아.”

   

   오랜만에 만나도 하는 이야기는 비슷했다. 여전히 루카스의 꿈자리는 사나웠고, 도영은 그에 대해 해줄 이야기가 없어 미안했고.

 

   “어릴 때 나 형이랑 결혼하겠다고 했던 말 기억 나? 형도 좋다고 했는데.”

   “아니, 난 기억 안 나.”

   “형 없으면 난 평생 수면부족으로 살아야 하나? 형이 나랑 결혼해주면 다 해결 될 텐데….”

   “근데 어떡해, 천존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걸.”

   “천존께서 딱 한 수만 양보 해주시면 좋을 텐데. 형 옆에 누워야 잘 자잖아, 나는.”

 

   자기가 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루카스는 도영이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사이에 먼저 도영을 제 팔 안에 소중하게 가둬놓고는 잠이 들었다.

  

   간만에 보는 루카스의 잠든 얼굴에 손을 뻗어 살살 쓸어주었다. 루카스는 분명 천존 본을 따다 만든 것처럼 똑같이 생겼다. 그렇지만 살아생전 제 나라를 지키려고 괴뢰도독부의 적군 이천여 명의 목을 베어낸 장군에게서 형형히 빛나는 살기 대신, 이 나라의 황제로서 안팎에 내보일 담대함이 들어차있었다. 천존이 괜히 자기 마음에 쏙 든다고 하는 게 아니겠지. 도영은 불면증이나 앓는 이 황제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꼭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다. 루카스가 황제가 되고서는 같이 잠에 드는 것도 괜히 이상해서 루카스가 잠들면 침대에서 슬쩍 빠져나오곤 했었지만, 오늘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지. 도영은 눈을 감고 고르게 오르내리는 루카스의 숨결을 이마에 그대로 받아내며 잠을 청했다.

  

   금방 깊게 잠이 든 루카스와 달리, 도영은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왜?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굉음이 황궁을 울렸다. 도영은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서 루카스를 흔들어 깨웠다. 욱희, 욱희, 일어나. 루카스는 그 잠깐 사이에 아주 깊게 잠들었는지 눈을 비비며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 생겼나봐, 얼른 일어나.”

  

   도영은 욱희의 눈 아래 볼을 양 엄지손가락으로 쓸어주며 여전히 비몽사몽한 욱희의 잠을 깨웠다. 아까 강녕전을 몰래 빠져나오는 걸 도와준 경호원들이 도영의 처소 주변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무전기로 급박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폐하는? 완전 내려앉았는데? 정문 애들 대답 안 해? 오가는 대화를 들어도 그 굉음에 대한 맥락을 전혀 잡을 수 없어 도영과 루카스는 의아한 눈을 서로 마주쳤다.

  

   둘 다 일단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급했던 탓에, 후다닥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잠옷 입은 모양새를 추스를 틈도 없이 서로 신발도 바꿔 신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급히 나와서는 바깥에 서있던 경호원을 붙잡아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폐하, 저기, 강녕전이….”

  

   루카스가 아주 어릴 때부터 경호했던 베테랑 경호원이었지만 이런 일에 경황이 없기는 마찬가지라 그 대답 또한 마뜩잖았다. 그러나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봤을 때, 새벽 한 시의 황궁 풍경 치고는 지나치게 밝고 붉은 빛이 강녕전을 온통통 에워싸고 있었다. 경호원은 궁에 상주하는 긴급 출동 인원을 투입시키고 별궁 경호인력에 황제의 호위를 맡긴 뒤 강녕전으로 달려갔다. 뒤늦게 그곳까지 따라간 황제와 도영의 눈 앞에는 지붕과 대들보가 내려앉은 채 시뻘건 불길에 집어삼켜진 황제의 침소 건물이 가득 들어찼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체?”

  

   눈으로 보고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인원들에게 황제는 큰 소리로 물었다. 강녕전 안에서 꼼짝없이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불길 틈에 갇혀있어야 할 황제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리자, 황제의 안위를 걱정하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 순간에 황제 쪽으로 향했다. 그제야 도영이 잔뜩 뻗댄 황제의 머리카락을 발견했고, 욱희의 뒤에 숨어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질해서 급하게 정리했다.

  

   “무사하십니까, 폐하.”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나,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누군가 고의로 일으킨 화재 같습니다.”

   “왜 그런 거지? 나를 해하려고?”

  

   당황해서 허둥대는 인원들의 시선을 모아놓을 만큼 근엄했던 말투는 다 갖다 버린 목소리로 욱희가 도영에게 물었다. 나를? 왜? 그제야 사람들의 눈에 도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폐하와 제사장께서 같이 계신 거야?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것도 보였다.

  

   “나는 볼 일이 있어 별궁에 들렀다 오는 길입니다. 다친 사람이 있습니까?”

  

   도영에 대해 수군거리는 강녕전 뜰 외부 경호인을 콕 찝어 루카스가 물었다. 그는 당황하여 수군거리던 걸 멈추고, 폭발의 충격으로 밀려나 찰과상을 입은 몇을 제외하고 부상자는 없다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일단 황제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큰 부상을 입지 않았고, 빠르게 투입된 소방 인원이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강녕전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는 것만 빼면 다른 피해 없이 화재 사건이 무마되었다.

  

   황궁 한복판에서, 그것도 황제의 생명을 노린 것이 분명한 이 사건은 빠르게 조사가 시작되었다. 잔해를 수습하며 폭발로 인해 일어난 화재의 잔해에서 연소된 사제 폭탄을 발견하고 사건의 경위를 조사한 결과, 정확히 황제의 침상 위치로 대들보가 무너지도록 시한폭탄이이 설치되었다고 했다. 도영은 그제야 욱희가 매일같이 꾸던 악몽의 정체부터 시작해서, 천존이 현신을 운운해가면서 욱희를 하필 그 날 밤에 불러내라고 했던 이유까지 알게 되었다. 루카스는 매일같이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을 꿔야 했고, 이를 도영에게 끊임없이 호소했던 것이다. 

  

   요즘 들어 루카스는 도영의 처소에 가는 일 없이 강녕전에서 잤었고, 혹시 별궁에 가더라도 대부분의 경호실 인원이나 수행원들 눈에 띄지 않게 다녔다. 그러니 황제가 평소처럼 당연히 강녕전에서 자고 있을 줄 알았던 사람들은 하필 사고 당일에 별궁으로 향했던 이유를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제사장이 그날따라 제 기운에 화마가 사무쳐 기도를 올리는게 좋겠다고 하였고, 새벽 시간에 마음을 편히 가라앉히고 기도하는 것도 지켜볼 겸 조용히 별궁에 다녀온 것뿐이다.’ 이렇게 잘도 둘러댄 루카스 덕분에, 또 건수 잡았다는 내각의 보수적 인물들의 의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제사장의 존재를 마땅찮게 여기던 사람들도 이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제사장의 역할을 인정했다. 다만 언론에 그대로 내보내기에는 황제가 지나치게 제사장과 그 신앙에 의지한다는 식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며 별궁 근처의 황실 도서관에 있어서 화를 피했다고 보도했다.

  

   후에 범인이 밝혀지기를, 선대 황제의 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루카스 이전에 황태자 책봉을 받기로 했었던 사촌 형의 사주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황실 재정 규모 축소를 하던 시점에 스스로 황궁을 나가서 사업을 하고 있던 그는 현재 직계 후손이 없는 루카스가 그 테러로 죽었을 때 황위를 물려받을 바로 다음 서열이었다. 추가적인 조사 결과 황실의 월권 같은 조작된 사실을 언론에 로비를 통해 유포한 정황 또한 드러나서, 벌어진 테러에 대한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일이 정리되고 황제의 침소가 다시 지어지는 동안, 본디 황제의 직계 가족이 사는 동궁에 루카스는 임시 침소를 마련했다. 어차피 루카스가 황태자 시절 본래 지내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루카스는 그 이후로 도영의 허락을 듣지도 않은 채 도영의 방을 늘 찾았다. 그 사건 이후로 ‘없던’ 불면증이 생겨 강녕전과 구조가 비슷한 동궁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적당한 변명도 곁들여서 대놓고 별궁에 황제 호위 인원을 붙이기까지 했다.

  

   “아, 강녕전 천장 낮게 지어달라고 할 걸.”

   “안 된다고 할 텐데.”

  

   꽤나 섬뜩한 일이 벌어졌지만 욱희는 오히려 좀 개운해보였다. 한참을 시달려온 끔찍한 꿈의 결말이 이토록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냥 짓는데 20년은 넘게 걸리면 좋겠다.”

   “계속 여기서 살게? 저거 다 짓는데 얼마 안 걸려.”

   “형, 나랑 결혼해줘.”

   

   매일같이 꿨던 악몽이 실제로 일어난 이상, 강녕전이 다시 지어진들 루카스는 그곳에서 다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게 뻔했다. 어쨌든 루카스는 황위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계속 지내야 했고, 잠과 건강을 깎아먹으면서 언제까지고 늠름하게 황좌에 앉아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천존은 또 저 내키는 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게 뻔했다. 대신, 욱희의 눈에는 딱 한 길의 해결책만이 또렷이 보였다. 도영이라면 함부로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어 차마 생각조차 못할 해결책이었다. 그렇지만 욱희의 입에서 나온 이상 결국 도영이 그 결정권을 떠넘겨 받을 수밖에 없었다.

 

   "헛소리 한다."

   “헛소리? 감히 황제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러다 동성혼 법제화도 황실 입김 들어갔다고 소문 날 걸?”

   “내가 장난치는 것 같습니까, 제사장.”

   “장난이 지나치시면 저도 화를 냅니다, 폐하.”

   “형이랑 같은 이불 덮으면, 강녕전이든 천장 없는 뜰이든 부엌이든 나는 다 괜찮아.”

     

   신 받은 사람이 점지받지 않은 상대와 멋대로 결혼했다간 배우자의 운과 생명을 갉아먹게 된다는 건 너무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욱희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 그러면서도 꼭, 여태 준비해왔던 것처럼 결혼 하자는 말을 자꾸 했다. 보통 흔히 받는 조상신도 아니고 천존을 받게 된 이상 애초부터 도영이 평생 자신의 인생에 없을 거라고 여겨왔던 일을 욱희가 하자고 한다.

   

   “네가 자꾸 그러니까, 진짜 그래도 될 것 같단 말이지.”

   “황제의 청혼을 어찌 감히 거절한단 말인가?”

   “권력 남용입니다.”

    

   제사장 수십을 거쳐 황궁 역사를 통틀어 쥐어왔다는 천존은, 유난스럽다 싶을 정도로 루카스에 대한 간섭이 드문 편이었다. 그렇지만 천존은 자신과 꼭 닮은 새 황제를 분명히 아꼈다. 하늘이 보살핀 듯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잘 풀린 걸 보면 그건 확실했다. 결국 도영은 제사장으로서 황제에게 해준 일은 이번 폭탄 테러를 피하게 했던 것을 제외하고 별로 없지만, 욱희는 그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저 도영이 곁에 있으면 다 될거라고 한다. 

    

   형이 있으면 다 돼. 형이 가라는 길이 가시밭길이어도 나한테는 그게 맞는 길이야. 그날 밤 욱희가 처음으로 도영에게 입을 맞췄을 때, 천존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새벽 시간 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별 묻는 것도 없이, 그저 강녕전 천장은 원래 전통대로 높게 지어도 된다고 아주 느닷없는 조언이나 했다.

 

   “욱희, 내일 밤엔 나랑 산에 올라갈까?”

   “응, 좋아.”

   “사당엘 가서, 천존한테 나 결혼해도 되냐고 물어봐야겠다.”

   “허락해주실까?”

   “그럴 걸.”

  

   사실은 허락이 필요한 게 아니라, 천존이 너를 점찍은 거야. 차마 이 말은 못 했다. 좋다고 방방거리는 황제라는 저 애가 못 견디고 날아가버릴까봐. 욱희는 즉위식 날 도영에게 맡겨둔 선대 황비의 반지를 여즉 찾아가지 않았다.

   

​   

   

불면이 종식하는 곳

 

김마죠리카 씀

바닥글.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