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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데려갈라

​익명

인어가 데려갈라

 

익명

 

 

 

 

 

자장 자장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인어가 데려갈라

 

늪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강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호수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바다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자장 자장

 

 

 

 

 

1

 

아주 어릴 적의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든 것이 궁금했던 아이였다고 한다. 유난히 밤이 되면 달라지는 하늘과 소리를 신기해했고 그래서 잠을 잘 들려고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자는 사이에 또 어떤 재미난 일이 일어날지 심통 비슷한 게 났던 모양이다. 그럴 때 마다 엄마는 따뜻한 자장가와 토닥임으로 나를 재우곤 하셨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언제 잠을 싫어했냐는 듯이 침대 밖을 나가려고 하지 않아서 주말 아침마다 어머니는 수고롭게 내 방에 어두운 커튼을 재끼며 햇빛으로 나를 깨웠다.

 

"아.. 어머니 제발요... 저 닷새동안 마차를 고쳤다구요.. 제발 조금만 더 자게 해주세요."

 

"게으른 소리 그만하고 교회 갈 거니까 얼른 일어나. 아니면 어릴 때처럼 이마에 입맞춤 해버릴거야."

 

"아, 일어났어요! 자 저 앉았죠?"

 

"눈을 떠야지 아가."

 

"아이, 어머니 저도 이제 어엿한 청년이에요... "

 

"네~ 얼른 옷 갈아입고 내려오세요. 아버지가 죽을 새벽부터 끊이고 있어요~"

 

"네.."

 

나름대로 화목하고 즐거운 부모님이었다. 형은 어릴 때부터 힘이 좋아서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성을 지키는 늠름한 기사 되었다. 나도 15살 생일까지는 초를 끄기 전 기사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지만, 올해 18살이 되던 해에 난 기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또 짜디 짠 바닷물 같은 스프를 먹겠구나."

 

교회를 가는 날이라 특별히 제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고소한 냄새와는 다르게 짠 스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숨에 스프를 마셔버리고 성경책만 챙겨서 오르간 연습을 하겠다며 먼저 집을 나섰다.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곧장 교회로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종이에 싼 치즈조각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발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2

 

" 자장 자장 아가 얼른 자야지.."

 

일종의 우리 만의 암호였다. 마을에서 15분쯤 숲으로 쭉 내달리면 제일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다. 거기서 해가 뜨지 않는 쪽으로 또 10분을 더 달리면 작지만 맑은 호수가 하나 있었다.

 

"호수에서 인어가 우리 아가 데려갈라...."

 

[첨벙]

 

"오늘은 저번보다 일찍 왔네요."

 

물속에 사람의 상체를 가진 무언가가 펄쩍 뛰어서 바위에 앉았다.

 

"말도 마. 엄청 큰 마차 수리가 들어왔단 말이야. 그거 하느라 손에 굳은 살 베긴 것 좀 봐"

 

호수에서 방금 막 나온 아이는 젖은 손으로 내 마른 손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부어서 열감이 있는 손에 시원한 물이 닿으니 꼭 다 나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그 냄새나는 건? 가져왔어요? 설마 까먹었어요? 안 가져왔다면 난 다시 들어갈거예요."

 

어설픈 말투로 빠르게 말하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일부러 치즈를 잊은 표정을 지었더니 꼭 울기라도 할 것처럼 나를 채근했다.

 

"히히..."

 

"뭐야~! 가지고 왔으면서 날 놀린 거예요? 너무해.."

 

첨벙하고는 반짝이는 꼬리로 물을 나에게 튕기더니 물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장난이 너무 심한 거 같아서 물을 보며 크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내가 심했어! 자 여기 치즈! 네 것이란 말이야. 네가 안 먹으면 이건 썩어버릴지도 몰라!"

 

울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내자 수면에 눈만 빼꼼 내밀고 연분홍색 머리카락만 보여주었다. 말은 안했지만 아이의 연분홍색은 이제껏 내가 살면서 본 색깔 중에 가장 이쁜 색이었다. 봄에 피는 진달래보다는 연했고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보다는 진한 색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번만 봐주는거예요.."

 

"응,응! 다음에는 장난치지 않아.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어.. 물에 이끼 닦고 흔들리는 비늘 뽑고 저번에 가져다 준 책을 벌써 다 읽어버렸고..."

 

"내가 다음에 다른 책 또 챙겨올게."

 

"네. 그리고 또..."

 

"또?"

 

"그리고 도영 기다렸어요. 그러니까 금방 시간이 왔어요. 나한테."

 

"어?"

 

"그냥 도영이 오늘 가져올 노란색 생각하니까 그렇던데.."

 

"아~ 뭐야.. 내가 아니고 이 치즈를 기다린거야?"

 

대답대신 물에 퐁당하고 들어가더니 공기방울 입으로 만들어 뽀로록거리면서 장난을 쳤다. 다부진 상체나 얼굴 골격을 보면 나이가 가늠이 안되긴 했지만 확실한 것은 어른보다는 아이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까끌꺼리지 않고 따뜻한 공기가 들어있는 느낌이었고 손은 나보다 훨씬 컸지만 손끝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가끔 내가 너무 귀여워서 볼이라도 만지면 그대로 굳어서 목 뒤에 난 비늘이 오소소 서는 게 너무 사랑스러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호주머니에 있는 시계를 꺼내어 보니 예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아! 나 이제 가야 돼. 예배시간 다 됐어."

 

"벌써요?"

 

"응.. 미안해.. 내일 더 일찍 올게."

 

"진짜죠? 그럼 그거 해요 우리. 마지막 손가락 이렇게 걸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네,네."

 

"응. 약속할게."

 

이마를 맞대고 새끼손가락을 단단히 걸고 왔던 숲길을 뛰어서 돌아갔다. 다행히도 예배 시간에 늦지 않게 와서 숨 돌리고 오르간 앞에 앉았다. 두 번 정도 손도 풀 겸 해서 반주를 쳐보았다. 한두 명씩 예배당르 채우더니 간단한 설교와 노래를 부르고 예배를 맞쳤다. 반주집을 정리하는 동안 윗마을에 사는 로이가 반가운 척을 했다.

 

"도영 키 많이 컸네."

 

"응. 너도 많이 컸네. 너 오랜만에 나오지?"

 

"어쩌다보니 근데 너 왜 이렇게 비린내가 나? 아침에 뭐 먹었냐?"

 

"쓸데없는 소리 할거면 다과실에 가서 일이나 도와라. 나 먼저 집에 간다."

 

"어, 야! 너 담주 게이트볼 경기 나올거지? 우리 선수 한 명 모자르다고!"

 

"안 가."

 

"야!"

 

듣기 싫은 높은 언성을 뒤로하고 집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이제 겨우 점심이 지났는데 난 아침이 기다려졌다.

 

 

 

 

3

 

"다녀왔습니다."

 

크게 인사를 하고 바로 방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들리는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에 놀라서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김도영 너 여기 앉아봐."

 

"네? 어머니 왜요.."

 

"너 교회가서 연습한다고 일찍 나가 놓고 어디갔었어?"

 

"어... 그게.."

 

"거짓말할 생각하지말고. 벌써 에스더가 말했어. 너 없이 혼자 연습 했다고."

 

꼬리가 너무 길었던 걸까 밟히고 말았다.

 

"사실 숲에 갔어요."

 

"숲에 왜?"

 

"거기 호수가 너무 예뻐서..."

 

"정말이야?"

 

"네.."

 

"엄마 눈보고."

 

"진짜예요. 나쁜 짓 같은 거 안 했어요."

 

"그러면 다행이고 난 또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줄 알았어. 그래도 앞으로 너무 자주 가지는 마. 위험하니까 엄마가 걱정돼서 그래."

 

"네."

 

"그래 올라가서 씻고 쉬어라."

 

"네."

 

정말 다행이었다. 스스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놀라 숨이 찼다. 살면서 거짓말로 누굴 속여 본 순간이다. 거짓말이 처음은 아니였지만, 매번 어리숙해서 금방 들통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잘 넘어갔다. 어머니를 속인 것은 너무 양심에 찔렸지만 절대로 내 별이 있는 곳은 알려줄 수 없었다.

 

 

 

 

4

 

아침에 일찍 호수로 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일찍부터 눈은 떠졌지만 어제 들은 어머니의 말 때문에 침대에서 한참을 뒹굴거렸다. 이른 점심쯤에 어머니와 함께 장에 나갔다.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소란스러움이 마냥 시끄럽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 우리 저 사과도 살까요?"

 

"그래. 올해 페트릭네 사과가 맛있다고 하더라고 거기서 사자."

 

"네."

 

그 때 시장 가운데서 어부인 그웬아저씨가 자꾸 마을 청년들이 사라진다고 우리가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이장님과 크게 싸우고 있었다.

 

"이장님 벌써 3명이에요! 너무 이상하지 않으세요?"

 

"참 이 양반아. 그 젋은 총각들을 누가 납치라도 했다는거야? 다들 이 시골이 지겨워서 떠난거라고!"

 

"그럴리가 없어요! 분명 그저께도 저랑 마을을 번창시켜보자고 얘기했던 청년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짐도 하나 가져가지 않고 사라지냐구요!"

 

"됐네! 헛소리 할꺼면 가서 생선이나 잡아! 다들 구경났어요! 일 보세요!"

 

큰 이장님의 호통소리에 상인들은 시선을 거두었지만 웅성거리는 소리에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 중에서 사라진 형의 약혼녀인 베르나누나는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난 엄마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누나에게로 달려갔다.

 

"누나.."

 

"어, 흠, 도영아 왔구나. 빵 사러 왔니?"

 

누나는 애써 웃으며 내 부름에 답해주었다. 이 동네에서 친한 사람이 친형 말고는 몇 없는 나에게 항상 대범한 조언을 해주던 누나의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누나, 형 다시 돌아올거야. 형이 이렇게 멋진 누나를 두고 도망갔을리가 없어."

 

"그럼. 누나도 알아. 그 겁쟁이는 내가 없으면 안돼. 도영아 위로해줘서 고마워."

 

"응."

 

"저기 엄마가 기다리신다. 얼른 가봐."

 

누나랑 손을 꼭 맞잡고 짧게 기도를 하고 어머니에게로 돌아오니 눈빛으로 잘 말하고 왔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 본 것을 정리하고 점심은 간단하게 빵을 먹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형이 집에 오는 날이였기 때문에 온 가족이 부지런히 저녁파티를 준비했다.

 

"어머니 형은 몇 시에 온대요?"

 

"응? 아마 7시쯤?"

 

"그러면 저 잠깐만 꽃 꺾어와도 돼요?"

 

"꽃? 갑자기 무슨 꽃?"

 

"형 주려고요. 집에 오랜만에 오니까.."

 

"기특하네. 그래 얼른 다녀와. 해지기 전에는 꼭 돌아와야 한다."

 

"네."

 

나는 그 길로 어릴 때 읽던 책과 사과 하나를 헌 가방에 넣고 호수가 있는 숲으로 달렸다.

 

 

 

 

 

5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린 탓에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살짝 굴렀지만 아프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 생각에 더 빨리 달려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에 있었다. 나는 호수가에 앉아 손으로 물장구를 치며 우리가 정한 암호도 잊고 소리쳤다.

 

"나 왔어! 늦어서 미안해! 제발 나와줘!"

 

그렇게 호숫가 근처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치자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 저 밑에서 연분홍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바람에 내가 미쳐 피하기전에 아이는 뛰어올랐고 나는 물에 흠뻑 젖어버렸다.

 

"으아, 차가워!"

 

"어! 미안해요! 너무 급하게 올라오다가...  어떡해... 다 젖어버렸어요."

 

아이는 멀찍이 서서 사과를 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는 나는 괜찮다고 이리오라고 손짓했다.

 

"오늘은 오래 있지 못해. 오랜만에 형이 집에 오거든. 이건 사과라는 과일이야. 맛이 아주 달고 새콤해.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가져왔어. 그리고 이건 새로운 책."

 

"이거 주려고 뛰어온거예요? 그래서 무릎도 까진 거고?"

 

"무릎?"

 

아이의 말에 무릎을 보자 피가 바지에 배어 나오고 있었다.

 

"오다가 살짝 넘어져서 그래. 큰 상처는 아닐거야."

 

"그래도... 잠깐 이리와봐요."

 

"왜?"

 

물가에 가까이 가자 아이는 나를 조심스럽게 앉히고는 손으로 무릎을 감쌌다. 밀려올 아픔에 미리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뭐지? 뭐한거야?"

 

"비밀이에요. 늦었다면서요. 이제 해가 잘 안보여요. 얼른 돌아가봐요."

 

"아, 맞아. 근데 있잖아. 나 자주 못 올 수도 있어."

 

아이는 뾰로퉁한 표정으로 입으로 물장난을 치며 되물었다.

 

"왜요?"

 

"그게 어머니께 내가 교회 안 가고 여기 오는 걸 들켰거든. 하지만 너랑 논다는 건 비밀로 했으니까 걱정마. 무튼 나 내일 모레 저녁에 올게."

 

"그럼 해가 두 번 뜨고 나서? 그 다음에?"

 

"응. 해가 두 번 뜨고 나서 그 날 저녁에."

 

"알겠어요. 얼른 가요."

 

"응. 갈게."

 

난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돌려 집으로 뛰었다. 그리고 까먹지 않고 길에 핀 들꽃도 꺾었다. 보라색 꽃과 빨간색 꽃이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마당에는 말 한 마리가 묶여있었다.

 

"형!"

 

"귀신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왔네. 왔어요 어머니."

 

힘껏 달려가서 형 목에 매달리자 형은 거뜬하게 받아주었다.

 

"너는 다 커서 애처럼 안기는 이제 무겁다."

 

"아직 형보다는 작아."

 

"그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사실이고. 그래도 제법 어른 티가 나네? 피부도 좀 탔고 이제 운동을 좀 하는 건가?"

 

"운동은 무슨, 도영이가 요즘 호수에서 노느라 탄거지. 동그란 물건이랑은 영 사이가 안 좋지. 우리 막내가."

 

"아, 어머니~!"

 

"엄마 여기 있다. 그만 부르세요. 자 형제들 가서 이제 고기 굽고 해야지?"

 

"넵! 어머니는 이제 쉬세요. 저랑 아버지랑 영이가 다 할게요."

 

"당연하지. 내 일은 아까 장 보는 거 까지였어. 이미 추가근무야."

 

"하하하!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보 빨리 할게요."

 

 

 

 

 

6

 

오랜만에 집이 시끌벅적하니 좋았다. 고기도 맛있었고 형이 해주는 성 안의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피아노랑 플룻을 더 열심해서 나도 궁중악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내심 형은 좋아하는 눈치였다. 뒷정리를 마치고 씻고 잘 준비를 하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형이 내 침대에서 앉아서 스케치북을 보고 있었다.

 

"형 뭐야! 왜 내 걸 마음대로 봐!"

 

"아이~ 궁금해서 그랬어. 미안해. 근데 스케치북에 온통 분홍색 꽃이던데. 영이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린 거야! 빨리 형 방에 가. 나 잘 거야."

 

"형이랑 이야기 좀 하고 놀다가 자라~ 응? 형 오랜만에 왔잖아."

 

"아 진짜 그럼 딱 12시까지만이야."

 

"고맙다 우리 동생."

 

형과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아주 사소한 이야기부터 가슴 속 깊이 있는 고민부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은 새로운 환경에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나도 얼른 어른이 되어서 이 마을도 너무 좋지만 좀 더 넓은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근데 형 그거 알아? 요셉형 사라졌다."

 

"사라지다니? 무슨 말이야."

 

"그웬아저씨가 그러는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래. 형 또래 청년들이 자꾸 사라진대. 근데 이장님말로는 시골이라서 마을을 떠난거래. 큰 도시로 간거라고.“                              

                           

"그래?"                                                            

 

"응. 근데 나는 도망갔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그 형을 잘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건 요셉형이 베르나누나를 두고 갔을 리가 없어. 만약 도망갔다면 분명 같이 갔을거야. 두 사람은 정말 사랑했거든."

 

"음.. 일리가 있네. 하지만 영아 사람 마음이란 건 참 쉽게 변해. 영원한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게 참 힘들어."

 

"형은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아?"

 

"오히려 그 반대야. 형은 사랑을 믿어. 그래서 변한다고 말하는거야. 음... 형이 기사수여식 할 때 내 목숨에 대해서 영원의 맹세를 하거든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근데 영원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느껴져?"

 

"약간은?"

 

"좀 더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을거야. 아직 영이 어리니까~"

 

"아, 형 나 다 컸어. 형 방에 가. 나 잘래."

 

"삐졌어?"

 

"화난거야. 불 끄고 나가줄래?"

 

"귀엽긴. 알겠어. 잘 자."

 

"응. 형도 잘 자."

 

형이 불끄고 나가자 말자 나는 오랜만에 뒤척이지 않고 잠에 들었다.

 

 

 

 

 

7

 

형도 가버리고 맡은 마차 수리도 다 끝나고 나니 정말 지루해졌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진짜로 교회 가서도 피아노 연습도 했지만 호수에 가지 못하게 되자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친구들이 연습하고 있는 게이트볼장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가서 친구들이 너무 반겨주어서 뭔가 쑥스러워졌다.

 

"올거면서 그 때 왜 안 온다고 뺐어?"

 

"그런거 아니야. 갑자기 약속이 없어져서 온거야. 너 자꾸 시비 걸면 나 다시 간다."

 

"아~ 알겠어. 같이 할거지?"

 

간다는 한마디에 로이는 바로 굽히고 들어왔다. 나쁜 애는 아니지만 말을 모나게 해서 기분을 종종 건드리는 9살 같은 친구였다.

 

"나 채 좀 빌려줄 수 있어?"

 

"그래. 어차피 남는 거. 빌려주지 뭐."

 

"고마워."

 

2시간 정도 열심히 게이트볼을 쳤다. 오랜만이지만 영 감을 잃은 건 아니였는지 공이 원하는 곳을 잘 가주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격렬한 움직임이 있는 운동은 아니지만 햇빛이 뜨거워서 땀이 절로 났다. 이럴 때는 호수를 가야 하는데 그 아이는 지금 뭐하려나? 빛나는 비늘을 바위에 올려놓고 해를 쬐고 있을까?

 

"우리 좀만 쉬었다. 하자. 너무 덥다."

 

"그래."

 

그늘진 벤치에 사이좋게 앉아서 땀을 식혔다. 잠깐 정적이 흐르는 걸 못 참고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네 그거 들었어?"

 

"뭔데?"

 

"그 우리 마을에서 사라졌다는 형들 말이야. 사실 물에 빠져 죽은거래?"

 

"조지 너 또 거짓말이지? 이번에는 안 속아."

 

"아니야. 이번에는 진짜야. 어젯밤에 화장실 가다가 엄마랑 아빠가 서재에서 하는 이야기 들은거라고."

 

"뭐? 진짜? 자세하게 말해봐."

 

우리는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머리를 모아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었다. 거짓말인지 의심되는 조지의 말을 이러했다. 사실 사라진 3명의 청년들이 죽기 전에 숲에 있는 호수가 자주 갔는데. 그 호수에 사람처럼 생긴 괴물이 산다고, 그런데 그 괴물이 마법의 힘을 청년들을 꾀어서 잡아 먹은거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조지 너 무서운 책보고 잤지?"

 

"아니거든!"

 

"호수에 괴물이 산다고? 야 우리 동생도 안 믿겠다."

 

"그래. 조지 이번에는 네가 너무 심했어."

 

"아, 정말 그래서 이번에 마을 보안관들이 숲이랑 호수 샅샅이 뒤져본다고 했다고! 너희들 내 말이 진짜면 어쩔래?"

 

조지에게 한마디씩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난 고민에 빠졌다. 호수라니 그 아이 위험해지는 거 아니야? 이런 소문 돌면 호수에 가서 막 해코지하면 어쩌지? 만약에 진짜 보안관들이 거기에 가면 어떡해? 불안해져버린 나는 조지에게 소리를 쳤다.

 

"너 같은 거짓말쟁이 때문에 모두가 피해 보는거야. 함부로 말하지마! 사라진 형들이 진짜 큰 도시에 간 거면 너 어쩌려고 그래? 호수에 괴물이라니 수준 낮기는.. 더는 못 들어주겠네. 너네들끼리 잘 놀아라."

 

"야, 야! 도영아 너 진짜 가는거야?!"

 

또 나를 목 놓아 부르는 로이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으로 가던 나는 방향을 돌려 숲으로 갔다.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8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숲으로 걸어갔다. 암호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호숫가에 다다랐는데 난 나무 뒤에 숨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마을 보안관들이 호수근처를 살펴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딱히 마을 형들의 어떤 것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3시간째 뒤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그 어부가 미친 거 아니에요?"

 

"일단 찾는 시늉은 해야지 매일 성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으니 윗사람들도 달리 방도가 있나? 찾는 척하고 없다는 걸 보여줘야 되지 않겠어. 딱 봐도 큰 도시에 허황된 꿈꾸고 도망간 새끼들인데."

 

"그럼 오늘은 이만 철수할까요?"

 

"그래. 날도 어두워지고 그만 들어가자고."

 

"자, 다들 철수. 내일 마저 찾을 거니까 삽이랑 곡괭이 같은 거 그대로 놓고 갑시다."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10명이 조금 넘는 사람이 우르르 숲 밖으로 나갔다. 난 천천히 숨을 죽이고 호숫가 근처로 갔다. 물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도 한참을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설마 그 사람들이 데려간 걸까? 불안한 마음에 수면 위를 있는 힘껏 내리치면서 나와 달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한참을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허탈한 마음에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그렇게 슬픔에 빠지려는 순간 분홍색 무언가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울어요?"

 

"너......진짜....."

 

"진짜 울어요?"

 

아이는 잽싸게 바위에 올라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나는 너무 안심이 되어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흑.. 얼마나.. 불렀는데... 왜 이제 흑..."

 

"미안해요. 아니 내일 저녁에 온다고 했잖아요. 낮부터 사람들 소리 많이 들리고 시끄러워서 밑에 내려가서 자고 있었어요. 근데 목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내가 잘못 들은건줄 알고 좀 늦게 올라왔어요."

 

"히끅.. 후우... 다행이다. 어디 다친 곳 없지? 괜찮은거지?"

 

"저 봐봐요. 하나도 안 다쳤어요."

 

옷이 젖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아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나보다 작은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아이에게 안겨있었다. 큰 손바닥으로 등을 어설프게 쓸어주는 것이 그냥 위로가 되었다. 놀란 마음은 진정이 되고 이제 다른 이유로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름 지어줄까?"

 

"나 이름 있는데?'

 

"진짜? 그런데 왜 말 안 해줬어?"

 

"물어보지도 않았고 내가 알려준다고 해도 알아듣지도 못할거예요. 인어들이 쓰는 말은 사람들한테 안 들리거든요."

 

"그럼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름 지어줘도 돼?"

 

"그래요. 좋아요."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마치 꼭 하늘에 뜬 별 같았다.

 

"별 어때?"

 

"별은 하늘에 있는 저거요? 저번에 가져다 준 책에서 봤어요. 밤에만 보이는 반짝이는 거. 별 맞죠?"

 

"응. 별은 한자로 성이라고 하는데 성이 어때?"

 

"좋다. 별이에요? 나?"

 

"응. 별이야. 반짝이고 세상에 너는 너뿐이잖아."

 

"그럼 도영이도 별이에요?"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지."

 

"우와... 멋지다."

 

품에 안겨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나보다 조금 느린 심장소리가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네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첨에는 했는데 지금은 네가 인어라서 좋아. 그냥 네가 좋아. 너는?"

 

"나도 도영이 좋아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고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더 좋을 거예요. 나보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이 같아요. 근데 그냥 어떤 모습이든 이제 도영이 좋아요."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지만 아까 해가 져버려서 하늘이 어둑해져있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 어머니와 아버지가 걱정할텐데 이 느린 심장 소리랑 멀어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어떡하지?"

 

"그래도 가야해요. 데려다주고 싶은데 다리가 없어서 미안해요.."

 

"아니야! 미안해 하지마. 나 때문에 그런 생각 하는거면 내가 너무 슬플거야. 내가 지느러미가 없고 꼬리가 없어서 미안했으면 좋겠어?"

 

"아니요!"

 

"그러니까 너도 그런 말하지마."

 

"왜 또 울려고 해요.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았어요? 어디에서 눈물이 다 나오는 거예요.."

 

"안 울어. 성아 나 또 올게. 그리고 내가 노래 부르는게 아니면 절대로 나오지마. 알겠지? 약속이야."

 

"네. 약속. 얼른 가요"

 

"응. 잘 있어!"

 

올 때와는 다르게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집으로 갔다.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버려서 한 차례 꾸중을 들었다. 성이와 오래 안고 있던 탓에 몸에 밴 물냄새에 어머니는 호수금지령을 내렸다. 내가 제발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 말을 지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점심에만 잠깐씩 갔다오면 아무도 모를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9

 

새벽부터 집이 시끄러워서 눈도 못 뜨고 내려갔는데 1층에 어제 본 보안관과 로이가 있었다. 비몽사몽한 걸음으로 로이에게 갔는데 로이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랬다.

 

"어.. 도영아..."

 

"뭐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그게..."

 

로이와 대화를 다 끝내기도 전에 어머니가 달려와 나를 뒤로 숨기고 말했다.

 

"우리 아이는 그 일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다들 나가지 못해요!"

 

어리둥절한 나보다 조금 작은 어머니 뒤에서 멀뚱히 서있자 보안관은 지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거기 도영군? 나와 이야기 좀 하겠어요. 그리 길지는 않을 거예요. 요즘 마을에 사라지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네?"

 

"간단한 질문에 답만 해주면 됩니다. 괜찮죠?"

 

"아, 네.."

 

가지 못하게 말리는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보안관을 따라 뒷마당으로 갔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로이도 초조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왔다.

 

"어제 저녁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보안관은 매서운 눈을 하고 나를 추궁했다.

 

"점심 좀 넘어서 친구들과 게이트볼을 치다가 산책했어요. 그리고 밤이 되기 전에 집에 들어왔구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로이라는 친구가 당신이 호수에 자주 가는 걸 봤다고 하더군요. 공교롭게도 청년들이 사라졌다고 하는 그 숲 호수 말이죠. 어제도 그 호수에 갔나요?"

 

"그건.."

 

"거짓 없이 대답해주세요."

 

"사실 어제 친구들이 호수에 괴물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어요. 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숲에 그런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화가 났어요. 그래서 호수에 간 건 맞아요. 하지만 전 그냥 호수 근처에서 화를 가라앉히고 바로 집으로 왔어요."

 

"한 치의 거짓말도 없는거죠? 호수에서 누구를 봤다거나 뭐 그런 것 없었죠?"

 

"그럼요. 거기에 누가 있겠어요. 그리고 보안관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고 숲을 훼손하거나 호수를 더럽히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마을의 모든 곳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기분이 좋지 않네요."

 

"조사는 곧 끝날 겁니다. 저희 또한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네요. 무튼 질문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럼 수고하세요. 로이야 너도 할말 있니?"

 

"아니, 아니. 보안관님 그럼 저도 가봐도 될까요?"

 

"그래요. 두 분 다 들어가 보세요. 저희도 이만 가겠습니다."

 

보안관들이 떠나고 부엌 식탁에 로이와 마주 보고 앉아서 스프를 먹었다. 어머니는 너무 놀랜 나머지 이마에 물수건을 얹고 침대에서 기절하듯이 잠이 드셨다.

 

"내 뒤를 밟은거야?"

 

"그게 네가 걱정이 되어서... 너무 늦었는데 숲으로 가길래.. 나쁜 의도는 없었어.."

 

"네 의도가 뭐가 됐든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정말 미안해.."

 

"호수에서 네가 본게 나뿐이야?"

 

"호수에서 네가 막 소리치는 것만 보고 너무 어두워서 집으로 돌아갔어.. 무서워져서.."

 

"그런데 보안관들이 왜 우리 집에 온 건데?"

 

"그게 저녁에 집에 돌아갔는데 아빠랑 이야기 나누고 있길래. 도영이가 자주 가는 호수인데 라고 말했더니 그렇게 됐어. 정말 너를 고자질할 생각은 없었어. 믿어줘. 진심이야."

 

"네 진심은 상관없고 나 화났으니까 그거 먹고 바로 나가. 맘 같아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어머니가 지금 좀 정신이 없으니까 참는 건줄 알아. 그리고 한번만 더 내 뒤를 밟았다간 말을 끝나지 않을거야. 나 먼저 올라간다."

 

먹던 스프를 개수대에 놓고 2층으로 올라와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이렇게 상황이 꼬인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숲에 아무도 관심도 없었으면서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니까 그게 숲에 있는 호수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10

 

먹은 것이 없는데도 속이 메스꺼워서 산책할 겸에서 또 숲으로 갔다. 지금 상황이 숲에 가면 또 오해를 살 것이 뻔했지만 그런 걸 재고 따질 시간에 성이를 보는 게 먼저였다. 발소리를 죽여서 매일 가던 길이 아닌 지름길로 갔더니 어제보다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아침에 본 보안관을 포함하여 대여섯명 정도가 호수에 배를 띄우고 그물 같은 것으로 물속을 조사하고 있었다. 미친 사람들

 

"경관님 여기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 뻔히 보이는데 이 뭐하는 짓인지 나 원..."

 

"그래도 구색을 갖춰야 지랄을 덜 하지. 호수물도 맑아서 바닥까지 보이는데 사람이 빠져죽기는 개뿔.."

 

"아무래도 그 어부놈 미친 거 같아요."

 

"몰라. 다들 한번만 더 찾고 갈거니까 집중해서 제대로 봐요. 뭐 옷이나 신발이라던지."

 

"어? 여기 먹다 버린 사과심 같은 게 있는데요!"

 

나무 뒤에 숨어있던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분명 며칠 전에 내가 성이에게 가져다준 사과인게 분명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나무 뒤에서 나와서 보안관에게 다가갔다.

 

"저 그거 제가 먹고 버린 거예요!"

 

"어? 그쪽은 아침에.. 아 여기 온다고 했었지. 도영군이 여기 근처에서 산책을 자주 했다고 했죠?"

 

"네.. 가끔은 사과도 가지고 와서 먹고 책도 읽고 그랬어요. 아침에도 말했잖아요. "

 

"어이, 그거 이 사람이 버린거야. 아침에 다 이야기했어. 그거 버리고 다른거 찾아보게나!"

 

"죄송해요. 제가 조사에 방해가 된 것 같네요."

 

"아닙니다. 근데 여긴 또 왜 온 거죠? 소문도 흉흉한데."

 

"전 그런 거짓 소문 안 믿어요. 그냥 맘이 답답해서 온 거예요. 출입금지라고 써 있지도 않고."

 

"아... 근데 아마 여기 못 들어오게 될 겁니다. 호수가 워낙 맑은데 깊어서... "

 

"어쨌든 아직은 아니니까. 그럼 수고들 하세요."

 

나는 돌아가는 척하면서 다시 나무 뒤에 숨어 사람들이 가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가지 앉아서 나무에 기대서 잠시 졸았다가 일어나니 호수근처는 고요했다. 급하게 몸을 일으켜 물에 다가가서 이름을 불렀다.

 

"성아, 나 왔어. 빨리 나와봐!"

 

오늘도 어제처럼 한참을 기다렸을까 분홍색 무언가가 끝이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올라왔다. 나는 다급하게 내 계획을 설명했다.

 

"성아, 이대로는 안되겠어.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옮겨줄게."

 

"네? 갑자기 왜요? 안돼요!"

 

"이제 이 호수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한대. 그렇게 되면 우리 이제 만날 수 없어. 내가 마차를 빌려서 내일 밤에 여기 올게. 그런 다음에 너를 싣고 더 넓은 호수로 옮겨줄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말이야. "

 

"더 큰 호수는 여기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어요. 내가 다른 방법을 알아볼게요."

 

"아니야! 너를 며칠이나 못 보면 나 죽을지도 몰라. 빨리 몰면 하루면 도착할거야. 내가 치즈도 잔뜩 챙겨서 올게. 우리 다른 곳으로 가자."

 

"하지만..."

 

"그리고 내가 호수 근처에 살거야. 집을 나오겠어. 나 내년이면 19살이야. 일도 할 수 있고.."

 

"도영.. 나는 물에 사는 인어에요. 우린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예요.. 출입금지가 되고 조금 지나면 사람들은 이 호수의 존재를 잊을 거고 그때 다시 만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나만 지금 네가 보고 싶어서 안달난거야? 너는 나를 며칠, 아니 어쩌면 몇 달을 안 봐도 괜찮다는 거야?"

 

"그게 아니고 난 도영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요."

 

성이는 자기를 이마를 내 이마에 붙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태어나서 비늘이 몇 번이나 완전히 떨어지고 새로 나는 동안 단 한번도 인어인 걸 슬프하거나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 못했는데 요즘 도영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슬퍼요. 당신이 슬퍼할까봐 말은 못했지만.."

 

"성아... 왜... 그런 생각을..."

 

"당신이 인어가 될 수는 없으니까... 어릴 때 할머니가 말해줬던 이야기에 사람이 된 인어가 한명 있었대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얼마 못가. 물거품이 되어버렸대요."

 

"난 널 절대 배신하지 않아."

 

나보다 큰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더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언제 이렇게 어른스러워진걸까?

 

"알아요."

 

"그러면 우리 이제 못 보는거야?"

 

"잠시에요. 그리 길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은 금세 질려하거든요."

 

"알겠어. 내가 진짜 어른이 되어서 우리 다시 만나자. 약속해."

 

"이번에는 손가락 말고 다른 걸로 해요."

 

성이는 말을 마치자 말자 내 입술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저번에 가져다준 책에서 사랑하는 사이는 이렇게 약속을 한대요."

 

"그래? 그럼 나도 할래."

 

이번에는 내가 성이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11

 

또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의 울음을 또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또 물비린내! 도영아 왜 그러는거야! 속도 한번 안 썩히는 애가 왜 그래.. 정말..."

 

어머니는 힘 없는 손으로 나를 때리며 흐느꼈다.

 

"마지막으로 갔다 온 거예요. 이제 호수 출입금지 한다고 해서..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마지막이지? 이제 안 가는거지? 막내야 얼른 대답해."

 

옆에 서 있던 아버지마저도 대답을 재촉했다. 두 분의 나의 확답을 듣고서야 침실로 돌아갔고 나는 힘 없는 발걸음으로 내 방에 올라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난 그대로 잠이 들었고 아침에 온 몸이 뜨거워서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억지로 눈을 떴다. 땀으로 온 몸이 젖어서 축축해져버린 옷을 대충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1층에 내려가자 어머니는 충혈된 눈과 열이 잔뜩 오른 이마를 만지고는 다시 침대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의사선생님 여기로 불렀어. 금방 올거야. 아버지가 밥 삶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네.."

 

삶은 밥을 겨우 넘기고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 그저 고뿔에 걸린 것이라며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일주일치 약과 주사를 놓고는 다시 돌아갔다. 애써 입고리를 당겨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난 또 한참을 잤다. 그렇게 사흘을 내리 침대에서 죽과 약만 먹고 보내었다. 4일째가 되어서야 몸이 좀 가벼워져서 일요일에 어머니와 함께 채비를 하여 교회로 갔다. 반주를 할 정도로 나아진 건 아니라서 그냥 예배하는 긴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점심을 먹기 전에 교회 앞마당에서 마을을 둘러보았는데 언제 왔는지 모르게 옆에 로이가 서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해. 거기서 우물쭈물 거리지말고."

 

"아, 그게 도영아. 감기는 다 나았어?"

 

"응. 이제 거의 괜찮아졌어. 걱정했니?"

 

"그럼, 집에도 과일 가지고 갔는데 너무 심하다고 해서 얼굴도 못 보고 와서 얼마나 걱정을 했다고."

 

"마음은 고마워."

 

"근데.. 너 그거 알아?"

 

"뭐?"

 

"우리 호수 없어졌다?"

 

"출입금지 된 거 나도 알아. 아프기 전에 이미 들었어."

 

"아니 그게 말고 그 어부 아저씨가 모래를 잔뜩 사서 그 호수에 부어버렸어. 그래서 아예 이제 호수 진흙탕 되어버리고 사람들이 그웬아저씨 미친 거 같다고.."

 

"뭐라고! 다시 제대로 말해봐!"

 

나는 로이의 멱살을 잡고 다시 말해보라고 소리쳤다.

 

"아니 호수에 모래를 부었, 켁! 도영아 이것 좀 놓고!.. "

 

로이는 멱살을 집어던지듯이 놓고는 바로 숲으로 달려갔다. 거짓말일거야. 호수를 덮었다니 무슨 그런 거짓말을 아닐거야.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열심히 뛰어 도착한 호수는 며칠 전 내가 봤던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호숫가 근처는 온통 모래투성이였고 맑고 깊던 호수는 흙탕물이 되어 뿌옇게 탁해져 있었다. 참담한 현실에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울 힘조차 없어서 호수가 근처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어제처럼 맑았다. 나는 허공에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 대답 좀 해보세요! 이게 제가 이제껏 기도한 물음에 답 인가요! 네! 대답 해보시라구요!"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메아리만 들릴 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뿌옇게 흐려진 물을 아무리 손으로 휘저어도 도무지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성이는 어떻게 된 걸까?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자장 자장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인어가 데려갈라

 

늪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강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호수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아가 아가 얼른 자야지

 

바다에서 우리 아가 데려갈라

 

자장 자장

 

 

노래가 끝날 때까지 수면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난 결국 천천히 호수로 걸어들어갔다.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하기로 했으니까 죽어서라도 너와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 사랑해 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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