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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팡나

 

무턱대고

 

 

 

 

3.

 

 재수학원의 공기는 어수선했다. 간절함에서 비롯한 불안이 쉬지 않고 수군거렸다. 각종 과들, 대학 이름, 입시 이야기들. 수능 마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했다. 두 달 채우자마자 나왔다. 최소 삼개월은 하기로 했는데. 이러는 애들 수두룩한지 그만둔다는 문자에 답신도 없었다. 그래도 나름 괜찮았다. 기계 잘 만져서 칭찬도 받았고, 나름 성실 근무해서 죄책감도 덜 했고그런데 왜 한 마디도 안 오지. 아프다고 하루 빠져서 그런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결국 그거였다. 재수학원. 민형아, 앞으로는 그러지 마. 인수인계는 하고 갔어야지. 그 말 듣고 괜히 편의점 찾아갔다가 새 알바생과 뻘쭘하게 눈 맞았다. 저기 인수인계 다 하신거죠. 네? 그런데요. 죄송해요 안녕히 계세요. 뭐야 안녕히 가세요. 알바생의 10분짜리 기억에 잠깐 들렀다 가는 쫌 이상한 손님 1로 남겨졌다. 그러고 학원을 등록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동영이?”

 “야, 김도영! 편의점 갔다 왔다. 에쎄 맞지? 취향 참 그렇다, 아재도 아니고.”

 

 이름이 바뀌었나, 다른 사람인가. 건들거리며 장난을 거는 남자에 억지로 웃어주는 걔랑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긴 했는데, 잠깐 눈이 커진 그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친구들이 둘러쌌다. 수업이 시작되자 의식적으로 뒤돌아보지 않으려는 걔의 뒤통수밖에 볼 수 없었다.

 

 “저기요.”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있는 도영에게 고민하다 말을 걸었다. 도영이 코를 훌쩍이곤 뒤돌아봤다.

 

 “네?”

 “혹시 김동영,”

 “몰라요.”

 

 단호하게 잘랐다. 그러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민형을 지나쳤다. 솔직히 맞지? 아니라니까 일단은 믿어야지. 그런데 왜 숨기지? 믿지는 못하고 물음표만 잔뜩 남은 채로 강의실에 돌아간 민형은 텅 빈 도영의 자리만 보며 한참을 멍때렸다.

 

 다음 날부턴 김도영이 안 왔다. 분명히 내가 아는 김동영 맞는데. 수업 전에 모여 떠드는 그 친구들이 심심풀이 삼아 터는 정보들이 자신도 모르게 켜켜이 쌓였다. 김도영이 자취를 한다는 것, 그들은 도영보다는 조금 형이라는 것, 그들이 제각기 n수를 했다는 것, 그리고 가지각색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뒷담화.

 

 “근데 걔 자취하는 집에 절대 사람 안 데려와.”

 “아, 씨. 어디서 마셔. 방잡기엔 돈아까운데.”

 “찾아가볼까? 그래도 우린데 대충 웃으면서 비비면 열어줄 걸.”

 걔가? 난 모르겠다. 애가 가끔 선그을 때가 있긴 한데 어쩔땐 씀씀이도 크고 착해. 아이씨, 미안한데. 그럼 한 번 가보기만 할까?

 

 실실거리며 장난치는 투로 대화가 오갔다. 도영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 도영과 유달리 친해보이는 사람이 나서서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한번 가보자고? 저도 모르게 샤프 뒤꽁무니를 씹었다. 어릴 때 버릇이었다. 깊은 고민에 빠지거나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펜 뒤꽁무니를 씹는 거. 하도 혼나서 짝지였던 동영이 말리기도 했었다. 언제였지? 초등학교 고학년. 사오학년 쯤? 다 고친 줄 알았는데, 새 샤프가 없어 열심히 닦았다. 털레털레.

 

 학원이 파하자 자습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다 집으로 돌아갔다. 민형은 도영과 노는 무리의 뒤를 따랐다. 미행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지만 합리화했다. 쟤네가 나쁜 짓할 수도 있고, 싫다는데 억지로 집에 들어갈 수도 있고……. 도착한 곳은 어느 빌라였다. 아마도 민형의 동네보다 재수학원에서 조금 더 가까웠다.

 

 “누구세요?”

 

 연속적인 벨소리에 인터폰으로 좀 짜증난 목소리가 들렸다. 김도영인 것 같았다. 도영아, 형들이야 나와봐. 김도영과 제일 친한 그 형이 뺀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는 걔가 맞다면 김동영은 나랑 동갑이었다.

 

 “이거 다 뭐에요? 안 된다고 했는데.”

 

 눈썹이 팔자로 늘어졌다. 원망조의 말투가 늘어졌다. 검은 봉지에 삐져나온 술병을 본 것 같았다. 그 표정으로 제일 친한 듯한, 야비하게 생긴 남자를 보더니 한숨을 크게 폭 쉬었다. 그러자 덩치 크고 사람 좋아하는 남자 한 명이 나서서 그러지 말고 우리 기분도 우울한데 한 잔 하자 회유했다. 응? 네 자취방 한 번 놀러와 줘야 어쩌고저쩌고. 의리가 어쩌고저쩌고. 김도영이 난감해하면서 계속 콜록거렸다. 아픈가? 아픈가봐. 1월 중순, 연중 가장 추울 때였다. 밖에서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옥신각신하는 김도영의 발끝 귀끝이 빨갰다. 계속 저러고 싸우면 어떡하지. 곤란하다잖아요. 저기요!

 

 “그럼 들어간다?”

 

 급한대로 휴대폰을 꺼냈다. 제발, 번호 바꾸지 말았어라. 전화번호부에도 없지만 익숙해진 번호를 꾹꾹 눌렀다.

 

 “누구지? 잠시만요. 여보세요?”

 “…….

 “여보세요?”

 “설명할 시간은 없고, 친구가 아파서 빨리 가봐야겠다고 해요.”

 “……네?”

 

 냅다 전화를 끊었다. 얼빠진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는 도영을 형아들이 재촉했다. 왜, 들어가자 빨리. 죄송해요. 친구가 아프대요. 지금 빨리 준비해서 가 봐야 될 거 같은데요. 에이씨, 알겠어 다음에 봐. 무리가 아쉽다는 듯 멀어졌다. 이민형은 조심스레 훔쳐보던 돌담에서 등을 뗐다.

 

 ”뭐야?”

 

 깜짝아! 뒤에서 들리는 도영의 목소리가 너무 가까워서 이민형은 필요 이상으로 화들짝 놀랐다. 뒷모습만 보인 채로 도영에게 팔목을 잡혔다. 아니 거기서 그렇게 티나게 보고 있는데 누가 몰라요. 민형의 얼굴을 본 도영이 티나게 당황했다. 뻘쭘해진 민형이 머리를 긁었다. 머리만 극지 말고 아무 말이나 해야 하는데 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

 

 그대로 도영이 빌라 현관을 닫으려 했다. 순간 자동문 틈을 필사적으로 잡았다. 김도영이 이민형 얼굴을 제대로 마주봤다. 눈이 커졌다.

 

 “저, 저기! 어…… 밖에 너무 약간 쫌 너무.”

 “네?”

 “추워.”

 “그래서?”

 “막차도 끊기고….

 

 김도영은 얼빠진 표정으로 이민형을 한참 보다가 문을 닫았다. 메시지를 보냈다.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답장이 왔다.

 

010-1040-2182

기억나는 대로 눌렀어. 놀라게 해서 미안...

 

 서성대는 이민형을 결국 집으로 들였다. 보일러를 켜고 따뜻한 물을 끓이는 내내 사방으로 고개를 흔들며 구경하고 온 몸을 가만있질 못했다. 죄송합니다아 죄송합니다 연신 실례를 외치며 들어오더니 도영이 시키는 대로 장판 위의 탁상 앞에 앉았다. 잔뜩 귤 쌓은 바구니를 보더니 우와 혼잣말하고 귤 갖고 놀았다. 먹어도 된다니까 고개를 저었다.

 

 “동상 걸렸어? 옷이 너무 가벼운데. 패딩 안에 반팔이 뭐야.”

 “학원이 너무 더워서.”

 

 학원 얘기가 나오자마자 침묵했다. 사실 이민형이 처음 왔을 때 김도영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했다. 어릴 때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고, 작은 학교라 격년으로 같은 반에 짝지를 했다. 이민형 짝지 김동영. 걔가 기억하는 제 모습이 싫어서. 목욕물 받아놨으니까 언 몸 풀라고 했더니 누구에게 자꾸 인사하는지 실례하겠습니다 하며 욕실에 들어갔다. 언제부터 긴장했는지 온몸에 긴장이 풀리자마자 피곤함이 밀려들었다. 집에 왜 들였지, 할아버지 깨어나시면 뭐라고 한담.

 

 

 

1.

 

 아빠는 항상 술병이 나서 누워 있었다. 술이 먼절까 아빠가 먼절까. 일상적인 일이었다. 닭과 알 중 누가 먼저인지 하는 것처럼 인과가 불분명한 일. 반면 패턴은 있었다. 오전 8시 10분. 이민형이 데리러 왔다. 정오. 점심을 먹었다. 오후 3시. 이것저것 끝낸 이민형이 나를 기다렸다가 같이 하교했다. 집에는 잘 안 데려왔지만 가끔 이민형이 니가 해주는 계란말이 먹고 싶다고 하면 해 줬다. 이민형은 티비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나 어른들 드라마를 봤다. 이거 우리엄마가 보는 건데 재미없어. 딴 거 보자. 지가 리모컨 잡고 있으면서 그랬다. 또봇 보다보면 시시하다 그치 했다. 그러면서 눈 반짝반짝 열심히도 봤다. 괜히 멋있어 보이고 싶은 건지, 왜 거짓말을 하지. 속이 훤해서 좋았다. 솔직하고 귀여워서 좋았다. 티비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관심 없었다. 맛있다면서 음식을 깨작깨작 남기고, 이 정도면 많이 먹는 거라며 내가 아빠 따라 해봤는데 먹지도 못해 그런 농담하는 게 좋았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맞아 너도 열심히 했어. 맛있어? 응 맛있어.

 오후 6시. 아빠가 동영아 물 좀 떠와봐 그래서 떠가면 눈치보며 민형을 돌려보내야 했다. 이민형은 이쯤 안 가면 자기도 혼난다며 미안해하는 나를 달랬다. 매번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다. 걔가 가면 집이 아무도 돌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괜히 혼자인 것 같았다.

 

 

 

2.

 

 6학년 무렵에는 걔한테 친구가 많았다. 6학년때 학교가 통폐합돼서 새 친구가 많아지고 반도 늘어났다. 5학년은 다른 반이었으니까 6학년은 같은 반 할 차례였는데 이민형은 1반, 나는 5반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등굣길은 함께였지만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남남이었다. 점심도 반별로 줄을 서서 먹었다. 하굣길에 이민형이 피씨방을 가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니까 할 말은 줄었고 어쩌다가 한 번 내가 이민형 집 가서 놀다 저녁 얻어먹는 정도였다. 더 이상 이민형은 우리 집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숨길 수가 있었는데 서운한 건 그게 안 됐다. 빨개진 귀보다 눈물이 더 감추기 어려운 것처럼. 가진 감정의 개수가 몇 개 안 되었을 때, 그래서 작은 설움에도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을 때.

 그런데도 조용한 나날이 지나갔다.

 

 

-

 

 

 “나 사실 너한테 비밀로 한 거 있어.”

 “…….

 “말해도 돼?”

 

 어쩌다 이민형 집에 놀러간 날이었다. 뜨거운 여름. 월요일. 일요일에 이민형은 친구 집에서 자고 학교에 왔다고 했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평소에는 휴대폰만 하면서 오늘은 눈을 보면서 ‘대신 나랑 계속 놀겠다고 약속해’ 했다. 알겠다고 했더니 숨을 크게 쉬고, 나 어제 야한 꿈 꿨어, 그랬다. 날씨가 뜨거웠다. 가까이 오니까 너무 더웠다. ……어땠어? 이상했어. 넌 그런 거 꾸지 마. 진짜 이상한 애네. 나는 걔가 꾼 꿈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보다 누가 나왔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이민형은 일어나서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근데 나도 말 안 한 거 있어.”

 “뭔데?” 이민형이 짐을 챙겼다.

 “나도 꿨어. 야한 꿈.”

 “진짜?”

 “저번에. 너 나왔어.”

 

 에에이, 장난치지 마. 이민형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아하학 하고 웃었다.

 

 “근데 동영아, 너 귀가 되게.. 약간 엄청 커.”

 

 그래서 빨개지는 것도 잘 보여. 순전히 신기하다는 듯 웃음기 걷힌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그냥 관찰한 걸 말하는 건 줄 알면서. 당황한 채 아니야, 라고 하긴 했는데. 자꾸 억울했다. 농담이라고 한 게 서운했나? 나도 몰랐다. 이민형도 당황해서 우는 나를 어색하게 안았다. 열린 틈은 모른 척해주면 좋을 텐데, 비집고 들어오면 더 서러운데. 열린 틈을 활짝 드러내놓고, 빤히 쳐다보는 이민형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겠던 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 졸업식 후 이민형은 훌쩍 유학을 갔다. 소새끼 말새끼 온갖 욕은 다 했는데 정작 진심으로 미워한 적은 없었다. 솔직히 좀만 생각해보면 소도 착하고 말도 착하고, 개는 말할 것도 없어 짱 착해. 사람이 제일 나쁘지. 근데 정작 이민형은 고양이를 더 닮았다. 답도 없어 잊어버리려고 했다. 당황하며 어색하게 안아 달래던 팔은 잊히지를 않았다. 그때도 이민형이 조금 더 작았다. 동그랗게 말아 토닥이던 손은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아이를 달래는 데 능숙하면서, 나더러는 항상 어른스럽다 그랬다.

 

 

 

 

3.

 

 “마크?”

 “응. 유학때 쓰던 이름 마크.”

 목욕을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던 이민형이 자연스레 수건 가지런히 접어 빨래통에 넣어두고 쪼르르 와 맞은편에서 귤 깠다. 나란히 장판 위에 깐 이불 한 겹. 그 위에 놓은 간이 탁자에서 담요 덮고 귤 까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머리 말리는 동안 할짓도 없고 먼저 까먹고 있었더니 자연스레 앉는 적응력이 어이없어 웃었다. 와 근데 이민형 너 진짜. 왜? 너 뻔뻔하고 웃겨서. (이민형의 충격먹은 표정). 아냐 농담이야. 미안해. 그냥 너랑 있으니까 편해서. 오물거렸다. 할 말이 없었다.

 

 “토끼 닮았어. 그래서 바로 딱, 보자마자 약간, 아 이건 백프로.”

 “그래서 알았다고?”

 “응, 근데 왜 도영이야?”

 별거 아니고 아빠 죽고 나서 할아버지가 사주때매 이름이라도 바꿔보자 그래서. 너도 새 이름 있으니까 나도 마크라고 부를까?

 “에이, 그건 쫌 그렇다. 마크를 3년이나 듣다 보니까 익숙하긴 한데,”

 “근데?”
 “너한텐 민형이지.”

 잠시 귤 까던 손이 멈칫했다. 이민형은 열심히 주워먹느라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색할 때 붕 뜨는 분위기는 여전한데 가라앉아 낯선 목소리가 새삼스러웠다. 너도 변성기 있었구나. 당연한 사실과 함께 내가 모르는 이민형의 시간이 떠오른다. 미지의 땅, 모르는 사람들, 그 속에서 웃고 떠드는,

 “미안해.”

 “뭐가 미안해?”

 “말도 없이 가서. 3년동안 있었는데, 연락 한 번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앞의 긴 여백이 여기까지 온 여정이 얼마나 멀었는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날 막차가 끊겨 제 방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재웠다. 도영은 침대에서 잤다. 옆에서 몇 번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미워해야 할지, 한다면 얼마나 미워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먼저 잠든 이민형의 새근한 숨소리가 나른했다.

 

 그 뒤로 이민형은 자주 들락거렸다. 혼자만 사는 집도 아닌데 처음엔 안절부절 못했지만 언제나 학원 마치고 오면 할아버지는 깊게 잠들어 계셨다. 투닥거리며 야식을 준비하다 결국 못 먹고 자기가 부지기수였고, 아침에 탄 계란프라이 냄새와 함께 일어난 적도 있었다. 걸레짝이 된 프라이를 버리고 새로 하면 옆에서 쫑알대며 변명했다. 그냥 가서 수저나 놔 줘. 입 댓발 나와서 말은 잘 들었다. 삐졌다기보다 자기한테 실망한 거였다. 잘 알아서 심심한 칭찬도 꼭 얹어줬다. 할아버지는 거의 아침 일찍 나가고 없었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며 가끔 아침 시간이 겹치는 날 일찍 집을 나서던 할아버지였다. 잠이 많은 두 젊음은 문 옆 탁상에 에쎄 프라임을 놓아두고 집을 나섰다. 너 담배 펴? 민형이 물었다. 아니 할아버지 껀데. 그 형들이 나 담배 피는 줄 알고 사다 줘.

 

 믿기지 않지만 이민형과 떨어져 있으면 집에 들인걸 후회했다. 돌아간 당일은 이민형이 있던 자리를 치웠고 이튿날은 하루종일 생각이 났다. 잊고 싶었고 그렇게 했고 새로운 이름이며 자란 모습 다 알려주기 싫었는데 다 들통나버린 게 짜증스러웠다. 오늘은 정말 오지 말라고 해야지, 할아버지 곤란하시니까. 안부라도 여쭐까 싶어 할아버지를 연락처에서 찾다 이내 화면을 껐다. 한숨이 샜다.

 

 월요일 밤에 이민형은 김도영 집에 있었다. 저번에 해주려다 만 거 해주겠다며 나머지 재료를 사들고 집으로 온다는데, 이민형이 산 재료들이 냉장고에 남아 있던 게 생각나 거절하지 못했다. 이민형은 오늘도 두꺼운 단벌 패딩 안으로 흰 반팔티를 입었다. 집에 매일 보일러 틀지도 않고 추울텐데. 찬 공기가 돌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들숨 날숨을 쉬는 등을 보다가 말했다.

 

 “이민형, 우리 집 더 오지 마.”

 

 들숨에서 굽은 등이 멎었다. 낮에 모르는 사람과 통화하던 이민형 뒷모습이 겹친다.

 

 “못들은 척하지 말고.”

 

 굽은 등은 다시 얕게 숨을 쉰다. 간격이 짧아졌다. 침묵이 길었다. 하루 종일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게 먹힌 것 같았다. 도영은 슬슬 잠이 오려고 했다. 감긴 눈이 뜨인 건 부스럭대는 소리 때문이었다. 이민형이 제 자리에서 일어나 패딩을 껴입고 있었다. 이리저리 제 짐을 챙기느라 부산스러웠다. 들고 온 게 없어서 아마도 휴대폰을 찾는 것 같았다.

 

 “오늘은 자고 가.”

 

 도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덜 뜬 눈을 부비고 침대 밑을 뒤지는 민형의 팔을 잡았다. 민형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제 팔을 잡은 도영의 팔목을 다시 잡았다. 서로 잡힌 모양새가 됐다가 갑자기 도영을 껴안은 패딩에서 찬 기운이 훅 끼쳤다. 몇초 후 뺨 부근에 미적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축축한 게 맞닿은 뺨을 타고 흘렀다. 도영의 팔이 허공을 떠돌다가 맞안았다. 민형의 등이 들썩거렸다. 흐느끼는 소리가 신음처럼 흘렀다. 흐느끼는 소리가 죽은 뒤에도 꼼짝 않고 몇 분은 그대로 있었다.

 

 도영이 양손으로 민형의 머리를 감싸잡고 마주보게 했다. 민형과 제 뺨을 손등으로 닦고 민형의 눈가를 문질렀다. 둘다 상당히 지쳐 있었고 도영은 민형이 울기 시작할 때쯤 번쩍 든 정신은 기력이 다해 당장이라도 잠들 것만 같았다. 이민형이 앉아있던 김도영을 바로 눕혔다. 김도영이 덮은 이불을 단정히 정리해 주었다. 안은 이민형을 마주안느라 둘의 다리가 교차되어 있었다. 자는 김도영 얼굴을 보자니 이민형의 속에서 살금 원망이 들었다. 다시 기어서 몰래 김도영 얼굴을 구경했다. 아무렇게나 눕히느라 앞머리가 눈을 찔러서 김도영 머리도 정리했다. 가까이 가서 빤히 보는데 김도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민형이 시선을 내리자마자 입을 맞췄다. 누가 먼저랄 것 없는 키스였다. 짠 맛이 났고, 숨결은 뜨거웠다. 맞잡은 볼은 한기를 머금어 차가웠다. 마치 우는 것처럼 호흡이 가빠졌다. 누가 더 바랐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민형은 집을 나섰다. 김도영은 잠에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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